나는 대체로 우중충한 옷을 입고
우중충한 얼굴로 우중충한 생각을 한다.
근거 없는 희망에 나를 걸고 백일몽을 믿으며
캔디처럼 살기에는 너무 무서웠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 건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더이상 앞날을 꿈꾸지 않게 되는 게 진짜 바닥이다.
최악을 예상하고 살다보면 차악 정도만 되어도
안심하고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로카드 읽는 카페, 기로의 끝에 중에서>
타로카드 읽는 카페 속 주인공 세련의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많이 상상했던 그녀의 표정은 무표정이었습니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무덤덤하고 무감각해 보이는, 언뜻 보면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평형을 맞추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가장 베이스에 깔린 감정은 0에서 1로 가는 방향이 아니라 -1로 가지 않기 위해 최대한 0로 자신을 맞추고 있는 상태였죠.
어떤 사람이든 살면서 한번쯤은, 진짜 아무런 고난과 좌절이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의 인생만을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한번쯤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우울한 시간을 보내게 되잖아요.
저 구절을 쓸 때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던 때의 기분을 최대한 떠올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진짜로 매일 매일 힘든 일만 일어나면 첫날에는 '내일은 괜찮겠지'하며 기대를 하게 되고, 둘째날에는 '내일은 나아질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한달 후에는 그런 기대도 하지 않고 차라리 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더 좋아질 것 같다는 기대가 꺾이는 그 경험 조차 상처가 되기 때문에 기대도 하고 싶지 않아지는 거에요.
그렇게 감정에 무뎌지면서 무감각과 무채색의 세계로 들어가는 게 우울증이고요. 우울증에 걸린 분들이 늘 우울하고, 조울증에 걸린 분들이 갑자기 울었다 웃었다 오락가락 하는 게 아니거든요.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거죠. 씻는 것도 귀찮고, 내 방과 주변을 정돈하는 것도 할 수 없을만큼 무기력해지니까. 그저 가만히 누워서 나에게 닥치는 모든 자극을 끊고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있게 됩니다.
조울증 역시 조증 기간이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니에요. 조울증의 기본 감정은 '우울'에 있습니다.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흑백의 세상에서 잠시 색이 돌아오는데, 그 마저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기쁨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은 아닌 거죠. 그래서 조울증을 앓다가 돌아가시는 분들은 우울증 기간이 아니라 조증 기간에 그런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울증의 기간에는 움직일 기력조차 낼 수 없었는데, 몸을 일으킬만한 기력이 돌아오면 '실행'을 하게 된다는 거에요.
우울증에 대해 잘 모르던 분들이 듣기엔 정말 놀랄만한 이야기죠?
제가 정말 싫어하는 게 있어요.
나의 감정으로, 나의 경험으로 타인의 감정과 경험을 단정짓는 것.
누군가가 '죽을 만큼 힘들다'는 일들이 내가 볼 땐 별 것 아니어 보일 수는 있어요. 그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런데 그걸 밖으로 소리내어 '뭐 그걸 가지고, 나약해 빠졌어'라고 평가해 버리는 사람을 싫어해요.
이전 화에서 얘기했던 대로 누군가의 행복과 여전히 행복한 삶은 우주의 행운에 불과합니다. 100% 우연, 그리고 이유 없는 운으로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고 또 간간히 행복함을 느끼며 살 수 있었던 거 거든요.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행운에 감사해야지 이 운이 닿지 못한 누군가를 평가하면 안돼요.
오늘도 누군가는 더 좋아지지 않아도 되니까, 더 나빠지지만 않길 바라며 살고 있을 수 있고, 내일은 그 대상이 내가 될지도 모르거든요.
그러나 같은 의미로, 나의 불행과 불운은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앞날에 닥칠 그 어떤 행운과 행복도 기대하지 않는, 차라리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버티고 있는 분들도 내일은 몰라요.
감정을 아예 느끼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눈과 귀를 막고 아무것도 보고 싶어하지 않으려는 분들에게는 어줍잖은 기대가 다른 형태의 좌절이 될 수도 있기에 위로와 용기를 드리는 시도 자체가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시간은 흐릅니다. 저는 그것만한 위로가 없었던 것 같아요.
즐겁고, 기쁜 순간이 언제였는지 모르게 흘러가버린 것처럼 돌아보면 슬프고 괴로운 순간도 어느새 지나있긴 하더라고요. 그 두가지, 아니 수없이 다채로운 감정들과 상황들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파도처럼 밀려오고 또 지나갑니다. 바위를 철썩철썩 때리는 저 파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는 그 이야기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요.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시간은 과거가 될거에요.
인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지나간 것을 어느 정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기억미화 기능이 있다는 건데요, 저는 학창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그 기능이 꽤 강력하다는 생각을 해요.
학창시절 우리는 얼마나 이 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리길 기도했습니까. 얼마나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얼마나 마음대로 살고 싶었습니까....? (저만......? ㅋㅋㅋ)
그런데 다 지난 뒤 지금은 한번씩 '다시한번 돌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잖아요. 때로는 그 또래 아이들을 보며 '지금이 제일 예쁘고 행복한 때야'라고 하기도 하고요.
근데, 아니에요. 우린 그때 다 하루 종일 손바닥만한 교실 책상에 10시간 이상 붙들려서 엄청 음울한 사춘기를 보내던 시커멓고 못생긴 아이들이었어요. 전혀 예쁘지도 않았고,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어린애들답게 기분나쁜 일은 금방 금방 잊어버리고 깔깔대며 웃긴 했겠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시련은 또 그런대로 견딜만 했고, 지나고 보니 그보다 더한 시련이 있다는 것도 배웠고, 또 지나고 보니 지나간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렇게 지나간 시간들만 아름답게 기억에 남은 거고요.
오늘의 문구가 실렸던 챕터의 카드는 소드2(Two of Swords) 카드 였습니다.
문제를 앞에 두고 꼼짝 못하고 있는 상태.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고 해석했네요.
원작에서도 동일하게 Two of Swords를 썼습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며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이 동일하게 쓰이네요.
살면서 양쪽으로 나누어진 두 가지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늘 아침 분명이 기분 좋게 눈을 떴는데, 점심을 먹는 동안 알 수 없이 울적해진다거나 하는 일도 흔하게 겪는 일이잖아요.
다만 카드에서는 '선택'의 기로라고 하고 있네요. 갈팡질팡, 오락가락하는 마음이나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결국 그 속에서 나의 기분을 '선택' 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뜻 아닐까 싶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웃는 이상한 캔디가 되자는 뜻은 아니고요,
'아, 외로울 수 있지! 아, 슬플 수 있지! 근데 뭐 그게 나만 그런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선택을 해 보면 또 다른 오늘이 되지 않을까....하는 얘기였어요. 마음의 방향을 선택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아!
오늘의 글을 쓰면서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소설 '타로카드 읽는 카페'의 출판 오퍼가 들어왔어요(이것도 약....1년반~2년정도의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브런치 대상을 받고 누구나 부러워할만큼 큰 출판사를 통해 출간을 하긴 했지만 저와 함께 출간을 했던 12회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의 다른 작가님들이 잘 나갈 때 저만 반응이 크지 않아 실망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거든요. 창비 출판에 왠지 미안하기도 했고요. 내가 아니었다면 베스트셀러를 낼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출판사인데 괜히 내가 끼어서...하고요.
그런데 전혀 고려한 적도 없었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라니. 심지어 그들은 제 원고를 읽어보지도 않고 짧은 소개내용만으로 선택한 거거든요. 아직 번역된 원고가 없으니까요. ㅎㅎ
생각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제 이야기를 선택해 주시니 얼떨떨하지만 그건 그런대로 또 신기한 기분이고 예상치 못한 행복이 되고 있습니다.
인생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 그것만이 인생의 진리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