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내 선물은
나에게 물어봐주면 좋겠어요.
<타로카드 읽는 카페, 거침없이 달려볼게>
다들 취향이 있으신가요?
연말이나 연초 SNS를 보면 자신만의 새해 소망을 적어두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몇년전부터 눈에 띄었던 새해 소망 중 하나가 바로 '올해는 내 취향을 만드는 한 해가 되도록 하겠다'는 말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늘 그 말이 이상했고요.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취향'이라고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것과, 별로 선호하지 않는 것, 싫어하는 것들을 비교적 명확히 나눌 수 있거든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 싫어해요. 대신 밤에는 얼마든지 늦게 잘 수 있죠. 밤에 깨어 있는 거 좋아하거든요.
산미가 있는 커피보다 고소한 커피를 좋아하고, 우유가 들어간 라떼 종류보다는 아메리카노를 선호합니다. 가끔 달달한게 당기면 크림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요.
바지보다는 치마를 좋아하는데, 어릴 땐 미니스커트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긴치마를 더 좋아해요. 오드리 햅번이 떠오르는 풀스커트 스타일이 일종의 추구미에요. 발레를 무척 좋아하지만 모든 춤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발레도 모던 발레보다는 아주 클래식한 작품들을 좋아해요. 그렇다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요. 곱창과 순대는 좋아하지만 선지는 안 좋아해요. 강아지를 사랑해서 일생동안 대부분의 시간에 강아지와 함께 살았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고양이 보다 강아지가 더 좋아요.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지만 실제로 만났던 사람이나 결혼한 사람은 엄청난 미남자는 아닙니다. 친구들에게 소개팅을 해달라고 할 때는 얼굴만 잘생기면 아무것도 상관 없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저는 이야기를 나눌 때 즐거운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 같긴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살면서 제일 중요한 건 제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원하는 것을 위해 잠깐의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견딜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해서까지 성취해야할, 가져야할 것은 없다고 생각해서 내키지 않는 일은 잘 하지 않고요.
어때요? 이 정도면 취향이 있는 사람인가요?
듣고 보면 별로 특별한 것도 없죠?
다들 이 정도의 취향은, 가지고 살고 있는 거죠?
그런데 왜 우리는 '취향이 있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한번씩 내가 그런가? 하고 망설이게 될까요?
'취향'이라고 하는 단어가 왠지 고급스러운 것을 선택하는 마음처럼 들려서 그런걸까요?
고급 식당의 와인리스트를 보면 '나는 이러저러한 와인, 몇년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샤넬, 루이비통 말고 아무도 모르는 이탈리아의 무슨 무슨 패션브랜드를 조금씩 모으고 있는 옷장을 가지고 있는 것,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완독했다는 자랑은 할 수 있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문고판 전집을 읽었다는 건 자랑거리는 아니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
저는 누군가 '나는 취향이 없다'라고 할 때면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지? 라고 생각했어요. 하물며 피자 한조각을 먹을 때도 꼬다리까지 먹는지, 꼬다리는 절대 안 먹는지 사람마다 다른데.
그래서 '취향을 만들어보겠다'는 말도 역시 이해하지 못했죠.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이라면 없을 수도 있어요(물론 저는 그들에게도 많지는 않지만 한 두가지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엄마 뱃속에서 선호하는 자세 같은 거).하지만 스물, 서른, 마흔이 되었는데도 취향이 없다고 말하는 건 그 동안의 삶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요. 하물며 순대를 먹을 때 내장을 넣어달라고 하는지 아닌지,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 걸 좋아하는지 소금에 찍어먹는 걸 좋아하는지 같은 취향도 없다는 말인가요......?
제가 지금까지 보고 느낀바로는 살아온 사람은 자신만의 취향이 있었습니다. 그것의 고급짐이나 독특함에 대해서는 또 다른 문제겠습니다만, 취향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만은 단호히, 모두가 있다고 말하겠어요.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굳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바로바로 말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요.
그러니 취향이라는 것은 새로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자신의 선호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취향이 없다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기억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보지 않았던 거죠.
종종 남사친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었어요.
"요즘 여자들은 뭘 좋아해? 여자친구 생일 선물로 뭘 사지? 넌 뭘 사주면 좋아할 것 같아?"
그리고 제 생각을, 제 입에서 나올 답을 기다리죠.
저는 "네 여자친구 생일선물은 네 여자친구한테 물어봐야지 왜 나한테 물어?"라고 대답해요.
그러면 또 답답해하면서 이렇게 묻는 거에요, "아니 요즘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 있잖아. 유행하는 거. 받고 싶어하는 거."
저 역시 답답해 하면서 다시 대답해줘요.
"내가 받고 싶은 걸 말하면 그건 내가 받고 싶은 거야. 직접 물어봐."
이쯤 되면 친구들은 늘 좀 짜증을 내곤했어요.
"야, 그럼 서프라이즈가 안되잖아." 라고요.
저는 더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그녀가 원하는 바로 그 선물을 하고 싶지만 그걸 비밀로 하고 싶었다면 관찰을 했었어야지!
뭘 먹을 때, 마실 때 더 잘 먹는 건 뭔지, 데이트 날 뭘 입고, 또 뭘 신고 나오는지. 어떤 악세서리들을 주로 하고 다니는지, 무슨 영화를 볼 때 특히 더 즐거워했는지.
누군가의 취향을 알려면 그 정도의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나의 취향에 대해 알려면 나 자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겠죠. 애정도 함께.
애정어린 관심과 관찰이 저는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때에 따라선 만들 수 있는)유일한 길인 것 같아요.
맨 위에 써 놓은 오늘의 한 구절인 "앞으로 내 선물은 나에게 물어봐 주면 좋겠어요"라는 말은 내 취향과 동떨어진 선물을 가져오는 누군가에게 하는 말임과 동시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를 위한 가장 좋은 선물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요.
취향을 만드려 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뭔지 살펴보는 것, 그리고 그게 어렵다면 나는 왜 내 취향을 스스로 알고 싶어하지 않는지, 거부하는지도 살펴보는 게 좋겠죠?
잘 만들어진 취향이 보기엔 그럴싸할 순 있겠지만 진짜라고 볼 순 없을테니까요.
그건 내 취향이 아니라 동경이죠. 동경은 내 것이 아니에요. 뭐, 언젠가는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서 편안할 순 없겠죠.
오늘의 이야기는 해당 챕터의 카드와 조금 결이 달라 카드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ㅎㅎ
대신 좋은 소식 두가지를 함께 전하고 갈게요.
첫번째 소식은 한국문학 번역원에서 진행하는 번역지원 사업에 소설 '타로카드 읽는 카페'가 선정되었다는 거에요. 이 사업에 선정이 되면 작품의 일부를 전문 번역가님이 영어로 번역해 주시는데, 영문 샘플이 있으면 해외 출판사에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조금 더 쉬워집니다.
총 28종의 작품 중 이렇게 선정이 되었다고 공고가 나왔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에요.
두번째 좋은 소식은 프랑스의 큰 출판사에서 '타로카드 읽는 카페' 출간 제안이 들어왔다는 거에요.
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알았지....? ㅎㅎㅎ
시놉시스만으로 제 소설을 과감히 선택해 주는 출판사들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반응이 국내에서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 글로 타로카드 읽는 카페를 처음 듣게 된 분들이 계시다면 꼭 한번 읽어봐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