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드되

Pas de Deux

by 문혜정 maya

*소설 '발레리나' 속 모든 에피소드와 인물은 허구입니다.








무거운 깁스를 질질 끌며 다가오는 찰랑이를 보니 예주는 눈물이 찔끔났다. 강아지를 안아들자 낑낑거리며 어리광을 피우며 그녀의 목을 끝도 없이 핥았다.


"어려서 예후는 좋을 것 같대. 밥도 잘 먹었고, 깁스 하고도 잘 돌아다니는데 뛰거나 점프 하는 건 못하게 하래."


남편은 옆에 서서 병원에서 당부한 것들을 줄줄 읊었다. 뭘 하고 뭘 하면 안되는지, 뭘 먹는 게 회복에 좋고, 목욕은 언제부터 할 수 있고 뭐 그런 사소한 것들. 예주의 귀에는 그런 것들이 선명하게 들리긴 했지만 어딘가에 남지는 않고 흘러 나갔다. 완전체로 다시 모인 그녀의 가족들이, 특별할 것 없는 지금 이 순간이 이상하게도 황홀해서였다.

일주일 전만해도 누가 '뭐 특별한 일 있어?'라고 물으면 '특별한 게 뭐 있어. 맨날 똑같지'라고 대답할 뿐인 그저 그런 일상적인 그림일 뿐인데 그들이 바로 여기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 마주보고 웃고, 만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한 일인지. 그래, 신비했다.


"짠! 나 어제밤에 당근에서 발견한 건데, 오는 길에 사왔어."


찰랑이를 안고 가슴팍에 코와 뺨을 문지르며 그 익숙한 강아지 냄새를 킁킁거리고 있을 때 남편이 뭔가를 몰고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개모차! 앞으로 찰랑이 깁스 풀 때까지 여기 태워서 산책할 거야."


남편은 아기 유모차와 다를바 없이 생긴 강아지용 캐리어의 덮개를 젖히고 찰랑이를 받아서 그 안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어떠냐고 묻는 그가 해맑아서 똑같이 해맑은 웃음이 나왔다. 남편이 눕힌대로 엎드린 채 꼬리만 살랑이는 강아지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예주는 갑자기 그 순간을 남겨놓고 싶었다. 시간은 흐르고 그녀가 이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없다면 그것을 기록해두고 한번씩 들춰보면 좋겠단 생각이었다.


"우리 사진 찍을까? 여기 옆에 서봐!"


셀카 모드로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캐리어 입구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곤 최대한 팔을 뻗었지만 예주의 팔길이로는 자꾸만 누군가의 얼굴이 절반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예주의 전화기를 받아들더니 머리 위로 팔을 쭉 뻗었다. 옹기종기 모인 셋의 얼굴이 작은 화면에 가득 찼다.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춘 채 기록됐다.

유쾌한 사진 촬영 후 그들은 살짝 들뜬 기분으로 산책을 나왔다. 남편은 연신 개모차 안에 있는 찰랑이를 흘낏거리고, 익숙하지는 않지만 편안하게 누운 강아지는 오랜만의 산책에 눈을 반쯤 감은 채 허공을 향해 끊임없이 코를 벌름 거리고, 예주는 개모차 손잡이를 밀고 있는 준석의 팔짱을 꼈다.


"애기가 있었으면 이랬을라나?"


준석이 말했다. 누군가 찰랑이가 누워있는 캐리어 안쪽을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신생아를 유모차에 싣고 산책을 나온 부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글쎄?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어? 후회해, 안 낳은 거?"


예주가 찰랑이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와 후회한다 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지만 후회한다 그러면 서운할 것 같기도 했다.


"후회는 아니고, 가끔 생각해 보는 거지. 어땠을까."


"어땠을 거 같은데?"


"매일 싸웠을 거 같아."


"어떨 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네가 예쁠 때. 네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우면 널 닮은 아이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을까, 우리의 아이라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그런데 왜 싸워?"


"너무 사랑하니까. 과유불급은 감정에도 해당하는 말인 거 알아? 다정도 병이라잖아. 너무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면 그것을 지키느라 너무 많은 힘을 쓰게 될 것 같아. 그 상대가 너일지리도."


"질투나네. 있지도 않은 아이를 질투하겠어."


"안해도 돼. 그래서 난 아이가 아니라 널 선택한 거 잖아. 너를 더 사랑하고 싶어서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 한 거야."


준석이 예주의 어깨를 한번 꽉 안았다 놔주었다.


"그러는 자기는 왜 아이를 갖지 않아도 된다고 한 거야? 나랑 똑같은 이유야?"


이번엔 준석이 물었다. 예주는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생각했다.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의 절반, 나의 절반을 닮은 아이. 아빠 친구들을 만나면 아빠 판박이라고 하고 엄마 친구들을 만나면 엄마를 찍어놓은 듯 하다고 할 그런 아이가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의 인생 40년을 그 아이를 키우는데 쓰는 대신 내 유전자가 약 100년의 생명을 연장하게 되는 것이다.

내 세계의 연장과 확장을 선택하느냐, 짧은 시간 내에 사그라질지언정 내가 파악할 수 있는 한의 깊이를 추구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삶에 대한 방향의 차이.


"나는 나 하나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서. 아이의 양육을 통해 나를 성숙하게 만들고 다음 세대에게 내가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맡기는 것보다 나 스스로 부딪히고, 완성하고, 멸망하고 싶었거든. 누군가는 바보 같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쌓은 도미노는 내가 무너뜨리고 싶어."


아하, 남편이 알겠다는 듯 가볍게 콧소리를 냈다. 오랜만에 두 주인들과 함께 한 산책이 마음이 놓인 건지, 일주일여의 병원 생활에 긴장이 풀린 건지 캐리어에 엎드린 채 고개를 꼿꼿이 들고 바깥 구경을 하던 찰랑이는 앞다리 위에 얼굴을 가만히 올린 채 어느새 얕은 잠이 들었다.

누가 들으면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을 이야기들을 조잘조잘 떠드느라 예주와 준석은 집으로 향하는 대신 캐리어를 끌고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예주가 늘 학원을 가는 그 길목도 지났고, 함께 장을 보러다니는 마트 앞도 지났다. 꽤 심오한 이야기가 오간 후에는 시덥잖은 우스개소리에 서로의 어깨를 퍽퍽 쳐대며 깔깔거리기도 했다.

그럴만한 사람도 없겠지만, 혹시나 누군가 그녀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예주는 '가장' 행복한 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다 느낄만한 순간으로 이런 순간들을 떠올리지 않을까 했다. 누군가는, 물론 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게 뭐가 행복이야? 진짜 행복한 게 뭔지 몰라서 그런거 아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너무 흔해서 '가장 행복'인지 아닌지도 구분할 수 없고, 너무 작아서 지나고 나면 또 금방 잊혀질 그런 순간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누구도 행복이 무엇이라고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처럼 예주가 느끼는 행복을 시시하다는 이유만으로 행복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예주는 쉐도우 복싱을 하는 사람처럼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혼자 공상하며 그런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이가 나타난다면 얼마든지 무섭게 맞받아쳐주리라 생각했다. 그랑바트망처럼 강력한 한방으로.

그리고 그렇게 정처없이 걷다보니 그 곳이 나타났다. 같은 동네여도 한번도 그 앞까지는 가본적이 없었던, 거기. 거기 쯤 있으리라 알고 있었지만 굳이 가본 적 없던.

사실은 거기가 거기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만약 하나를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교회에서 나오고 있었다. 삼삼오오 나뉜 작은 그룹 중 하나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봤던 그 얇은 에코백을 매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가방은 유인물로 찢어질 듯 가득차 있었고 무게 때문에 팽팽하게 당겨지고 쳐진 가방끈은 얇게 겹쳐져 하나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가방에 다 안들어갔는지 가슴팍에도 종이 뭉치 같은 걸 가득 안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거추장스러워 보이고 불편해 보이는 와중에 하나의 얼굴에는 미소가 잔잔하게 띄워져 있었다. 그 언밸런스함이 아기 대신 개를 넣은 유모차를 끌며 환하게 웃는 예주와 비슷했을까?

하나를 발견한 예주는 눈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그녀를 쳐다봤고 뒤늦게 예주를 발견한 하나 역시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둘은 인사를 나누지도, 아는 척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가만히 바라봤을 뿐이다. 거기에 서로가 없는 것처럼, 허공을 응시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면서도 눈빛이 부딪히지는 않았다. 진공의 공간을 뚫고 지나가는 빛처럼 그냥 슥, 꿰뚫고 지나갔다.

하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예주는 알길이 없었다. 다만, 자신이 하나를 보며 '불행할 것이다, 진짜 행복이 뭔지 모를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주 잠시였지만 예주가 하나의 삶에 들어와 휘저었던 순간들을.

아니, 그때는 그런 줄 알았지만 지금 와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반대인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이 하나의 일상으로 파고들어 이런 저런 훈수를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하나가 예주의 일상으로 교묘하고 음침하게 흘러들었다.

아니, 그것도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그저 이제와 돌아보니 예주의 판단이 그러했을 뿐.

누가 누구의 삶을 판단했나. 누가 누구의 삶을 바꾸려 들었나. 그건 누구였을까.

행복해 보이네. 그들은 생각했다. 더이상은 내 삶에 들어오지마. 내 것을 멋대로 바꾸려들지마. 하나를 바라보며 예주는 속으로 소리쳤다. 내 의지를 흔들어 놓지마. 내 삶의 의미를 네 뜻대로 제단하지마. 너는 아무것도 몰라. 예주를 보며 하나가 생각했다. 어쩌면 반대였는지도 모른다. 그 어떤 쪽으로 생각하든 별반 틀리지 않았다.

서로에게 들리지 않는 그 어떤 공간에 잠시 함께 머물렀던 그들은 다시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지나쳐갔다. 더 하지 못한 이야기도 없고, 더 해주고 싶은 무언가도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그저 서로의 앞에 놓인 것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 손에 쥐고 있는 것 뿐이었다.


"어때? 나도 해볼까? 그거 재미있는 거 맞지?"


망상인지 환상인지 모를 하나와의 대화가 가득찬 예주의 머리속으로 준석의 한 마디가 슬그머니 한발짝을 들이밀었다.


"뭐를?"


예주는 그 앞단에 남편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시침을 뚝 떼고 물었다. 찰나였지만 완벽하다 생각했던 순간의 행복에 전혀 다른 재질의 무언가가 끼어들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발레."


"발레?"


"같이 다니자며. 더 늙기 전에 시작하는 게 좋다 그랬잖아. 늙어서 관절염 걸리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예주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비현실적인 현실이라는 게 이런 순간을 말하는 것일까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남편이 묻는 게 정말 '발레'를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이 맞는지,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나를 신경쓰느라 내가 뭘 놓쳤나? 예주는 여전히 입을 막은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편을 빤히 쳐다봤다.

자그마치 8년이다. 그에게 같이 발레를 배워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던 시간들이. 그때마다 남편은 별로 관심이 없다, 다른 운동을 하고 싶다, 발레복을 입고 싶지 않다, 그냥 싫다, 수만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예주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모든 핑계들에 단 하나의 이유를 들어 그를 다시 설득하곤 했다. 발레는 재미있어. 세상 그 무엇보다 발레가 제일 재미있어.


"왜 갑자기?"


지금껏 혼란스러움에 흠뻑 취해있다가 갑작스럽게 툭 던져진 남편의 한 마디에 갑자기 방방 뜨는 자신이 너무 가볍고 하잘 것 없이 느껴졌지만 예주는 어쩔 수 없이 빙그레 벌어진 입술로 물었다.


"얼마나 재미있나 궁금해져서. 자기가 그렇게 푹 빠져있는 게 뭔지."


"새삼?"


"응, 새삼. 그럴 때도 있잖아. 새삼스러운 것들이 궁금해지는 때.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은 때."


있지. 예주는 다 이해한다는 듯 너그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대신 나 그, 그 남사스러운 옷은 안입을 거야. 츄리닝 입고 할 거야."


남편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예주는 옷은 아무 상관 없다고 남편에게 설명했다. 입고 싶은 걸 입으라고. 어차피 하다보면 알게 될 일이다. 왜 모두들 그런 남사스러운 옷을 입고 발레를 하는지는. 세상에는 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반드시 체험해 봐야 알 수 있는 일이 있는데 발레의 모든 것은 해봐야 아는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주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남편의 첫번째 발레 수업을 앞두고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적당한 시간의 수업을 등록하는 것부터, 아직 발가락의 쓰임이 자유롭지 않은 그에게 잘 맞을 편안한 발레슈즈를 찾는 것, 바와 센터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발레 예절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외계어 같은 발레용어들 중 반드시 기억해야할 기본적인 단어는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 등등.

그녀는 금새 자신의 세계로 빠르게 몰입했다. 무너진 성벽처럼 어딘지 모르게 너절해졌던 지난 겨울이 봄을 맞아 재건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겨울과 비교해서 그녀의 삶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세상에.


"거기 수강생들 대부분이 여자지? 나 보고 놀라면 어떡해? 너무 못한다고 속으로 흉보면 어떡하지?"


남편은 짐짓 심각한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처럼 예주에게 속삭였다.


"걱정마. 아무도 자기한테 관심없을 거야. 적어도 발레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야. 나 하는 거 바빠서 남 하는 거 볼새도 없어. 해보면 알아. 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데 거기 남자가 있는지 호랑이가 있는지 알게 뭐야."


"그렇게 힘들어?"


준석이 다소 의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발레가 힘들다는 것은 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 살랑살랑, 팔랑팔랑거리는 몸짓들이 힘들다고?


"죽음이야."


예주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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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쯤이 마지막편이 될 것 같아요. 끝까지 재미있게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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