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Essay_내 속도와 방향이 당신 눈엔 불완전 해 보이겠지만
브런치에 연재된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2021년 4월 말,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발간됩니다.
이제 서점에서 만나요!
'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은 매월,
하나의 에세이와 그 달에 어울리는 꽃과 사진을 정리한 이야기, 총 2개의 글을 발행합니다.
평생 12월 31일에 일찍 잠자리에 든 적이 없다.
연예대상, 연기대상, 가요대상 등 나와는 상관 없는 화려한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 상을 주고 받고 축하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구경하고, 마치 그 순간은 나도 그 곳에 속한 사람처럼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고 그 후로도 두어시간 쯤은 더 달뜬 상태로 SNS에 새해 인사를 올리고 그리고도 TV를 끄지 못한 채 영화 채널을 여기 저기 뒤적이다가 해가 뜨기 겨우 몇 시간에야 눈을 감는다.
그러니 그 다음 날인 1월 1일, 새로운 해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당연히 해 본적이 없다.
나는 지나가는 해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즐기고, 새로운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한 후 잠이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평생 부모님에게는 '새해해도 늦잠이나 자는 게으름뱅이' 취급을 받았다. 보통 때도 일찍 일어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 이 날의 늦잠이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1월 1일의 늦잠은 언제나 부모님의 잔소리를 동반하곤 한다.
‘새 해부터 늦잠이니!’라는 핀잔과 함께. 이상하게도.
나는 1월 1일에는 출근을 하지 않는다.
회사원일 때는 공휴일이라 그랬고,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된 후에는 하루라도 더 영업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싶어 조금 망설였으나 '이런 골목에 새해부터 누군가 나와 커피를 마실리가 없다'는 생각에 문을 열지 않는다. 논리적 근거는 없고 내가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니 다들 그럴 것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에서이다.
그럼 새해에도 늦잠이나 자고 일어난 게으름뱅이는 1월 1일에 무엇을할까?
이르게 준비했던 다이어리 두 권 중(12월의 에세이 참고)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무지 다이어리를 꺼낸다. 그리고 적고 싶은 것을 적는다.
내가 적는 것에는 제한이 없다.
평소 가지고 싶었던 것, 사려고 마음 먹었지만 비싸서 망설였던 것, 여행 가고 싶었던 곳, 가고 싶은 계절, 당장 사 먹고싶은 음식,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었던 요리, 새로 배워보고 싶은 것, 지난해에 이어 더욱 박차를 가해서 준비해야 할 일, 읽고 싶은 책, 쓰고 싶은 글.......
다이어리는 금새 한 장이 채워진다. 그래도 적어야 할 것이 남아 있으면 다음 장에도, 그 다음 장에도 계속 쓴다. 나는 내가 써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난 참 욕망이 많은 사람이군'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함께 생각해 보는 건, '그래서 내일 당장 죽는다면 나는 이것들을 해보지 못한 것을 억울해 하고 아쉬워할까?'이다. 보통의 자기 개발서에는 죽기 직전 후회할만한 것만을 남기고, 그렇지 않은 것을 제외하라고 한다. 인간이 가진 유한한 시간의 효율성 측면에서 본다면 그럴싸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러 페이지에 샘솟는 욕망과 열정을 우두두두둑 쏟아내듯 적을 수는 있어도 '내일의 죽음을 압도하는 욕망과 열정의 아이템'을 발견한 적은 없다. 지금을 즐겁게, 열심히 살게 할만한 무언가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그걸 안하면 죽을 것 같은 무언가는 한번도 없었단 말이다.
그런 나에게 '넌 의미없는 삶을 그냥 이어가고 있어'라고 할 수 있을까? '열정을 불사를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니 넌 불행할 거야'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의 많은 꽃들은 대부분 추위가 가시는 봄에 싹을 틔우고 다시 추위가 찾아오면 땅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모두들 웅크리고 숨겨진 겨울보다 생명이 찾아오는 봄을 기다린다.
하지만 더위가 힘을 잃고 찬 바람이 불어올 때 제 계절을 맞이하는 꽃들도 있다. 그런 꽃들은 한 겨울 추위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다가 봄이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쯤 꿈처럼 스르르 사라진다.
헬레보러스(Helleborus).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중 하나인 헬레보러스의 닉네임은 크리스마스로즈이다. 꽃이 거의 사라지는 크리스마스 즈음 절정으로 피는 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지나 겨울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헬레보러스 역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맞이한다. 다른 꽃들이 봄볕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할 때 자기만의 속도와 시간을 가지고 기다렸기 때문에 헬레보러스는 겨울 꽃시장에서 사랑을 받는다.
꽃의 얼굴은 꼿꼿하다기 보다 수줍은 듯 곡선을 그리며 아래를 향하고 있고, 습자지처럼 얇고 연약한 꽃잎을 가진 봄꽃들과는 다르게 도톰하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홑겹의 꽃잎(꽃받침)을 가지고 있다. 컬러는 밝은 연둣빛을 바탕으로 깔고 옅은 핑크, 로즈핑크, 빈티지한 퍼플 등 다양한 종류로 나뉘어 진다. 어떤 색이든 예쁘지 않은 아이가 없다. 봄, 여름, 가을의 연약하고 화려한 꽃들이 주춤해진 겨울 시즌 가장 고마운 꽃이다.
섬세한 생김에 단단한 꽃의 얼굴도 좋지만 내가 헬레보러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유연한 가지에 있다. 통통한 헬레보러스의 가지는 나무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어떻게 휘어도 쉽게 부러지지 않을만큼 유연하다. 꽃다발을 만들다보면 가지가 약한 꽃들은 한 두송이 쯤 꺽이기 마련인데 헬레보러스는 다소 거칠게 다루어도 꺽이거나 상처가 나지 않는다. 물에 넣지 않고 몇시간 있어도 쉽게 시들지 않는다. 거친 계절을 제철로 둔 꽃답다.
일반적인 시간 순서를 기준으로 보면 헬레보러스는 순방향이 아니라 역방향의 생주기를 가진 것 같다. 하지만 헬레보러스가 잘못된 건 아니지. 그들은 그저 자신의 주기를 가지고 있을 뿐.
아주 어릴 때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주변의 속도에 따라 나의 속도를 정하지 말자', '나에게 맞는 방향을 찾는 것이 먼저다', '방향을 찾은 후에도 방향을 잃을 정도로 달려나가지 말자'라고 늘 다짐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인생을 살고 즐기리라, 고.
하지만 이 방향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는데 속도까지 느린 것처럼 느껴지고 시간이 지날 수록 '이것이 맞다'는 확신이 짙어지는 게 아니라 예전만큼 어리지도 않다는 사실만 확실해진다. 쉽지 않다.
1월이 되어 새로운 계획을 세울 기회가 다시 돌아왔지만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딪을 용기는 옅어진다. 망설이며 신중한 와중에 '게으름뱅이'라는 질타도 받는다.
나는 그저 나에게 필요한 만큼 생각하고, 걷고, 쉬고싶을 뿐인데. 내 사이클이 다른 것을 왜 비난하지?
나는 나만의 속도와 방향이 있다고 하면서도 왜 그것에 마음을 쓰지? 평온치 못한 나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일 죽을 날을 앞둔 나를 떠올려 본다. 그때의 내가 분명하게 후회할 일을 하고 있는지. 그때의 내가 아쉬움에 눈을 감지 못할만한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건지.
아니.
다이어리 가득 적어두었던 것들을 다 하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억울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적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은 후회할 것 같다. 내 스스로의 속도와 방향으로 이끄는 삶은 불안정할 수는 있지만 불완전할 수는 없다. 그것을 내가 설정하는 순간, 그건 그냥 완전히 내 것이니까.
두번 생각해 봐도 왜 남들처럼 살지 않았는지를 후회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왜 내가 원하는대로 살지 않았는지를 후회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지 말자. 나 역시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기준을 평가하지 말자. 내가 완전할 수 있는 건 내 인생에 있어서만이다.
헬레보러스의 꽃말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나의 불안을 진정시켜 주세요'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 이유'라고 한다. 완벽해 보이는 헬레보러스도 자신이 향하는 방향과 속도가 불안했던 걸까? 존재 이유와 불안을 동시에 꽃말로 가지고 있다니, 그것조차 참 자기다운 꽃인 것 같아 마음에 든다.
매월 첫번째 월요일에는 그 달의 에세이를 써서 발행합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그 달에 어울리는 꽃, 직접 만든 꽃, 찍어 놓은 사진을 정리하여 발행합니다.
저의 글과 꽃과 사진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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