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Dried Flowers (말린 꽃들, 말라버린 꽃들)
브런치에 연재된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이제 서점에서 만나요!
December: Dried Flowers
인간의 12월은 번쩍이는 조명아래 밤새도록 즐기는 파티와 행사로 가득한 달이지만 자연의 12월은 사실 아주 고요하고 적막한 달이다. 밖에는 귀가 떨어져나갈 듯한 칼 바람이 불고, 눈 쌓인 화단은 지난 봄, 가을 무슨 꽃이 피어있었는지 기억도 나지않을 정도로 황량하다. 일년 간 자연이 부지런히 만든 모든 것이 정리되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다림만이 웅크리고 있다.
Dried Flowers (말린 꽃, 마른 꽃)
이 시즌 꽃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들기 적합한 나무나 잎소재들이다. 나도 이때는 꽃보다 향나무, 전나무, 더글라스, 오리목, 삼나무, 측백, 편백 같은 상록수나 침엽수를 주로 들여오는데, 이것들로 리스와 갈란드를 잔뜩 만들어 벽마다 주렁 주렁 달면 겨울의 황량함이 자동으로 포근한 연말 분위기로 바뀐다.
하지만 리스나 갈란드는 물에 꽂아 두는 것이 아니라 주로 벽이나 문에 걸어 두고 겨우내 감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이 필요한 생화보다는 미리 말려 놓은 드라이 플라워 같은 것을 이용해 장식을 한다.
여기 저기 매달아 둘 리스와 갈란드를 모두 장식하려면 말린 꽃들이 꽤 많이 필요한데, 나는 이 때가 되면 날을 잡아 스튜디오 안을 슬슬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말려 놓았던 드라이 플라워들을 꺼내어 한데 모은다. 아니, 말려놓았던 것이라기 보다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구석에 그냥 쌓아 놓았던 애물단지들이다.
대부분의 플로리스트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꽃을 잘 버리지 못한다. 시든 것만 조금 정리하면 며칠 더 볼 수 있을 것 같은 애들도 있고, 시든 것이 분명 하지만 내가 마음을 쏟아 꽂았던 것들이라 그냥 휙 뽑아 버리지 못하는 애들도 있다.
건조한 스튜디오는 그 꽃들이 자연스럽게 마를 수 있는 적합한 환경이어서 굳이 따로 작업을 하지 않아도 연말 쯤 되면 스튜디오에는 꽤 많은 양의 드라이 플라워가 모이게 된다.
말린 꽃들은 대개 약품처리를 한 것이 아니면 본래의 색에 조금 누리끼리한 색이 끼고 꽃잎도 쭈글쭈글 해진다. 꽃잎에 생기가 있었던 것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분이 다 날아간 꽃들은 만개했을 때 만큼 아름답거나 온전하지는 않다.
보고있으면 꼭 나이 많은 여배우 같다. 아직도 아름답다 할 수 있긴 하지만, 또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때의 아름다움이 얼핏 비치긴 하지만, 전성기의 모습은 아닌 조금은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이는 특유의 쓸쓸한 모습 때문에 드라이 플라워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어떤이는 더이상 시들지 않기 때문에 드라이 플라워를 좋아하기도 한다. 다만 내가 가진 드라이 플라워 중에 ‘일부러' 만든 것은 없다. 나는 생기가 가득한 살아 있는 꽃들을 더 좋아한다. 그것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들 뿐이다. 생생한 것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반대로 버릴 수 없었던, 시든 것들.
내가 늘 요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이 시들어 버린 꽃을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잘 말리셨어요? 멋있다.’라고 말할 때이다. 그럼 나는 민망하게 ‘말린게 아니라 마른 거에요. 그냥 점점 시들어 가는 거죠.’라고 대답한다.
되게 멋없는 대답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달리 말을 꾸며낼 재간도 없고 거짓말도 잘 못하는 편이라 그냥 사실대로 털어놓는데, 그럼 상대방은 묘하게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정성을 들여 소중히 잘 말려놓은 것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구석에 방치된 채 시들어 빠진 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데 반대로 나는 그의 말 한마디에 분명 시들어가는 시시한 것들이 또 괜찮아 보인다.
사춘기 이후로 나는 평온한 감정의 상태를 단 며칠이라도 지속적으로 유지해 본 적이 없다. 아니, 기억은 못하지만 사춘기 이전도 비슷했을 것 같다. 갱년기 역시 한참 남았지만 그때가 되면 나는 또 평온함에서 멀어져 다시 한번 감정의 골 속을 휘몰아쳐 다닐 것 같다.
나의 삶은 대체로 평범하고 행복하지만 나는 일주일에 평균 세번 정도는 우울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쩜 하는 일마다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고, 마음 먹은대로 해 내는 것도 없고, 남들은 별 노력없이도 쉽게 이루는 것 같은 일들을 나는 매일 매일 쉬지 않고 노력해도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건지.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게 의미가 있기는 한걸까, 회의적인 감정이 나를 사로잡는다.
한참을 그렇게 우울한 감정에 빠져 있다가, 그 날 일어난 험난한 뉴스들를 한번 쭉 훑어보고나서 나는 지금 딱히 아픈 곳도 없고, 가족 모두 건강히 큰 사건 사고 없이 잘 지내고 있고, 크게 해 낸 것은 없지만 크게 말아먹은 것도 없고, 손바느질 앞치마니, 에나멜 구두니 하는 쇼핑 위시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계절에 한번은 망설임 없이 사고싶을 때 살 수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불행의 한 구덩이에서 갑자기 소박한 행복에 감사해진 나는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영문도 모르는 남편은 (아마도 매일 이러는 내가 익숙해진 것일테지만) 나도 사랑한다고 답장을 보내 준다. 이런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나의 하루, 한달, 그리고 일년을 채우고 있다.
알 수 없는 불안과 고뇌와 절망에 오락가락 하던 나는, 스무살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서른살이 지나면 내가 좀 더 단단히 뿌리를 박고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앞자리 숫자가 다시 바뀌는 길목에서 위태롭게 들판에 혼자 피어 있는 꽃처럼 흔들리고 있다. 곧 태풍이 몰아칠 것 같이 주위는 어둡고 물기 젖은 바람이 자꾸만 나를 흔드는 것 같다. 나이가 듦에 따라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쉰이 되고 예순이 되어도 비슷할 거라는 것 말고는.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방법은 여전히 찾지 못했지만 흔들린 감정을 다시 추스려 돌아오는 방법은 찾아냈다. 사실은 내가 내 삶을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걸 떠올리면 된다.
내가 흔들리는 이유는 내 삶을 망치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이다.
나의 선택이 소중한 나의 삶을 망쳐버릴까 두려워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괴로움과 두려움 마저도 꼭 쥐고 놓지 못하는 것이다.
드디어 일년의 마지막 달이다. 마음 깊은 곳에 묵혀 쌓아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슥 한번 훑어보고 정리하기 좋은 때가 왔다.
나는 나의 어딘가가 망가져있으면 고칠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배울 것이고,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차없이 잘라낼 것이다. 망가진 곳이 나를 아프게 하고, 무지한 내가 창피하고, 어렵게 정 붙인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나의 마른 꽃들은 ‘멋있는 것'이 되기도 하고, ‘이제는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언제나 둘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결정은 내 선택이다. 그리고 내 선택의 기준은 나의 행복이다. 그것이 결국 합리화라 할지라도, 정신승리라 할지라도 상관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소중한 내 삶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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