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불완전한 매력

November: Oriental Bitter Sweet (노박덩굴)

by 문혜정 maya



브런치에 연재된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2021년 4월 말,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발간 됩니다.


이제 서점에서 만나요!







November: Oriental BitterSweet

완벽하게 불완전한 매력









가을이 깊어 겨울로 달려가는 시기의 꽃시장은 이제 꽃보다 단풍이 든 잎과 나무가지, 붉게 물든 열매들이 더 주목 받는다. 꽃들도 화사하고 방긋방긋 웃는 천진한 것들보다 무겁고 묵직하고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아이들이 더 많다. 가을로도, 겨울로도 건너뛸 수 있는 11월의 꽃들은 한 걸음 뒤로 뒤처진 사람처럼, 앞으로 빠르게 치고 나가는 누군가처럼, 제자리를 종종걸음치는 나처럼 모든 것이 뒤섞여 있다.


노박덩굴(Oriental BitterSweet)




이 시기에 나오는 열매 달린것들 중 나는 노박덩굴(Oriental BitterSweet)을 자주 산다. 까치밥이라는 닉네임으로도 불리는 노박덩굴은 꽃이 필 때가 아닌, 열매가 달리기 시작할 때 꽃시장에 나온다. 정말 까치들이 좋아하는 열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약간 딱딱한 껍질 안에는 채도가 높은 주황색의 작은 열매들이 들어 있다. 환타보다도 맑은 주황색이다. 가만 보고 있으면 꽤 맛있어 보이긴 한다(하지만 야생의 식물들은 함부로 시식이나 시음을 해 보면 안된다).

10월 말부터 조금씩 시장에 나오는 노박덩굴은 계절이 깊어갈 수록 조금씩 얼굴을 달리하는데, 대체로 거의 정리되지 않은 어지러운 형태로 그냥 대충 동여맨 채 팔린다.

초기에 나오는 노박덩굴은 열매가 많이 달려있기는 하지만 아직 속열매가 벌어지지 않아 노란색의 딱딱한 겉껍데기가 싸인 채로 유통 되고, 11월이 되면 겉껍질이 세갈래로 열리며 안에 들어 있는 진주황색의 열매가 톡하고 드러난 것들이 나온다. 딱딱한 겉껍질과는 달리 말랑한 속열매는 안에 씨앗을 품고 있다. 장난삼아 꾹 누르면 씨앗과 함께 주황 물이 터져나온다.

이 시기의 노박덩굴은 아주 잘 익은 상태여서 대충 묶인 단을 풀어내다가 아까운 잔 가지들이 부러지거나 열매들이 후두둑 떨어질 때도 많다. 그래도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건, 아직도 많은 잔가지들이, 열매들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직 기회가 넉넉히 남은 기분이 든다. 혹은 몇번쯤 틀려도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자신감이 붙는다.



하지만 내가 다른 여러 가을 열매식물들 중에 노박덩굴을 즐겨 찾는데에는 귀여운 열매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 이름에 ‘덩굴'이 붙어있는만큼 노박덩굴의 가지는 꽤 구불구불하고 곱슬곱슬한데, 클레마티스가 여리여리하고 휘청이는 풀같은 덩굴줄기였다면 노박덩굴은 이리저리 정신없이 구부러져 있으면서도 유연함이라고는 없는, 딴딴한 나무가지의 덩굴줄기이다. 직선으로 쭉뻗은 보통의 나무가지들보다는 유연한편이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펴거나 억지로 구부리다가는 툭하고 부러져 버리는 융통성 없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리저리 정신 없이 휘어지고 구부러진 노박덩굴의 줄기는 굳이 내가 애써 다른 방향, 다른 모습으로 매만져주지 않아도 될 정도의 매력적인 곡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노박덩굴은 플로리스트들이 사랑하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가장 멋진 나무가지 중 하나이다. 깊어진 가을에 만나는 노박덩굴은 이제 꽃도, 잎도 다 떨어져 하나도 붙어 있지 않지만 보글보글 붙어 있는 먹음직스러운 까치밥 열매와 예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거친 가지의 휘어짐은 꼭 꽃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해 준다.





꽃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었을 때는 형태가 정확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공식처럼, 이렇게 꽂으면 이런 모양이 나오는 것, 이런 모양을 만들어야지하고 마음먹은 대로 만들어지는 꽃들을 좋아했다. 그게 잘 한 것처럼 느껴졌다.

몇년 전 내가 예쁘다고, 마음에 든다고 저장해 두었던 꽃 작품들 사진을 다시 꺼내어 본다. 그 속의 꽃들은 지나치게 장식적이거나 지나치게 통제되어 있다. 축구공처럼 모난곳 없이 동그랗게 잡은 꽃다발과 그 아래 방사형으로 질서정연하게 뻗는 줄기들, 초승달을 그대로 베어온 듯, 찔릴 듯 뾰족한 선이 살아있는 어레인지먼트 같은 것들이다.

누군가가 본다면 ‘어머,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어머, 이런 걸 만들려면 연습을 많이해야겠다' 싶은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게 재미 없어지기 시작했다. 슬쩍만 건드려도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꽃과 나무들이 점점 더 마음에 들어왔다. 내 가이드가 없어도 자신을 충분히 드러내는 선들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가 정말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것도 이미 그 자체로 완벽히 아름다운 꽃을 가지고?


갑작스럽게 마음에 변화가 생긴 건 이런 의문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완벽한 무언가를 만지작거려서 얻을 수 있는 결과물에 대한 경우의 수는 딱 두가지라는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1. 원래 완벽하게 태어난 그 자체 그대로 완벽한 것으로 남는다.
2. 만질 수록 점점 더 완벽하지 않은 무언가가 된다.


나는 이 두가지의 결과를 추론해 내고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완벽해지기 위한 노력이 무용하거나, 오히려 완벽에서 멀어지는 길이 될 수 있다니.

내가 굳이 2번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결론은 당연히 ‘아니다’였다. 그 후로 내가 꽃을 대하는 태도나 작품을 만드는 스타일이 많이 변화했다.





나는 아마 이때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노력’으로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그것이 완벽하게 태어난 것이든, 불완전하게 태어난 것이든 그 목표가 ‘완벽'이라면 말이다.

그나마 시도해볼 가능성이 있는 건 나 자신 정도일까? 하지만 노력을 통해 나 자신을 완벽한 존재로 만드는 것도 절대 쉽지 않다. 우리는 이미 평생에 걸쳐 그 노력을 하고 있으니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평생, 오늘, 지금 이 시간까지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실 알고 있다. 그 노력은 내가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의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껴서라는 걸.

노박덩굴의 아름다움은 자로 그린 듯 완벽한 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척박한 생태계의 환경에 순응하거나 반항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만들어 낸 예기치 못한 선에서 나온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대로 자르고, 묶고, 뒤틀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럴 수록 그가 지닌 완벽하게 불완전한 매력이 반감된다.



그러니 나 자신의 마음 말고는 무엇이든 이리저리 휘둘러 내 입맛에 맞추려는 생각은 그냥 접는 게 낫겠다. 누가 나를 붙잡고 흔드는 것도 너무 싫은데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필요는 없겠지.

아니, 어쩌면 나 자신에게도 그렇겠다. 조금 틈을 두고 나라는 사람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지금은 골치 아프기만 한 반항적인 이 선이, 결실을 맺는 그 때에 가서는 어떤 모양을 그리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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