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척이는 이별의 끝

September: Clematis (클레마티스)

by 문혜정 maya



브런치에 연재된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2021년 4월 말,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발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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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Clematis

질척이는 이별의 끝








나는 줄기가 유연하고 형태가 자유로운 덩굴식물들을 좋아한다. 비록 혼자서는 똑 바로 서있지도 못하고 휘청거리지만 다섯 손가락 만큼이나 유용한 덩굴손으로 수직의 벽, 뾰족한 막대기 할 것 없이 꽉 움켜쥐고 거침없이 위로 올라가는 덩굴식물들은 언제 봐도 신기한 존재들이다.


클레마티스 (Clematis)




꽃을 피우는 덩굴 식물 중 내가 좋아하는 클레마티스(Clematis)는 늦은 봄과 여름이 제철인 꽃이다. 보통 여름이라고 하면 7, 8월을 생각하지만 나는 다음해를 기약하며 마지막으로 만나는 초 가을의 클레마티스도 좋아한다.

클레마티스는 여리여리하고 우아한 덩굴성의 줄기와 연보라색, 선명한 보라색, 자주색, 핫한 핑크색, 와인색 등 화려한 컬러의 매력적인 꽃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말 이름으로는 ‘으아리꽃'이라고도 하지만 꽃시장에서는 주로 ‘클레마티스'로 통한다.

가늘고 연약한 줄기는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꽃의 무게 때문에 휘어지고 엉켜서 꺾이기 쉽다. 그래서 사온 꽃을 다듬을 때마다 새가슴이 되긴 하지만 한 줄기만 툭 꽂아놓아도 특유의 여유롭고 우아한 모습이 돋보여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내고 싶을 땐 빠지지 않고 들여오는 꽃 중 하나이다.





너무 좋아하는 꽃이다 보니 집에서도 하나 키우고 있는데 한 겨울에는 잎이 다 지고 가지도 바짝 말라버려서 볼품이 하나도 없지만, 말라버린 가지를 짧게 잘라버리고 뿌리만 남겨놓으면 봄의 시작과 함께 새싹도 다시 돋아난다.

클레마티스 줄기들이 위로 위로 막 자라나기 시작할 때 작은 사다리처럼 생긴 덩굴식물용 지지대나 긴 막대기 같은 걸 옆에 꽂아두면 자기를 위한 것임을 알아차리곤 금새 몸을 기대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다음날 다시 보면 기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어느새 지지대에 줄기를 한바퀴 뱅그르 돌려서 꼭 잡고 서 있기도 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도 하는 냥, 돌아섰다 다시 보면 또 조금 자라있기 때문에 새싹을 보자마자 지주를 세워주지 않으면 가느다란 덩굴 줄기가 금방 길게 자라 힘없이 쓰러져 이리저리 엉켜버릴 것이다.





언제나 무언가를 꼭 붙들고 살아온 클레마티스는 꽃꽂이를 하기 위해 잔 가지와 이파리를 잘 정리해 두어도 옆에 다른 꽃이 있으면 금방 달라붙어 엉켜버린다. 구불 구불한 줄기의 모양 자체가 닿기만 해도 엉겨붙기 쉽게 생겼기 때문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엉켜버린 줄기를 조심스럽게 떼어내며 나는 클레마티스의 덩굴손들이 꼭 감정같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잘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슬쩍 슬쩍 달라붙어 나를 감는 지난 감정들.



쉬운 이별이 있을까?

나는 언제나 힘든 이별을 했다. 물론 나만 힘든 이별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체로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니까.

하지만 ‘그동안 즐거웠고, 다시는 만나지말자.’하고 깔끔하게 끝내는 연애를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스스로는 꽤 쿨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연애와 이별만은 늘 지지부진하고 눈물겹고 찌질했다. 주로 긴 연애를 했고, 긴 시간동안 연인들은 천천히 식어갔고, 나 몰래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을 조금씩 채워넣곤 했다.

물론 ‘처음의 그들’은 꽤 열정적이고 열렬한 구애를 했고 나 역시 그에 상응하는 열렬한 애정으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열심이었던 건 나 뿐이었다. 나는 열정적인 연인들의 변심을 눈치채지 못할만큼, 아니 그것도 포용할만큼 사랑에 성실했고 둔하게 알아차리지 못한 변화의 끝에서 그들은 언제나 일방적인 안녕을 고했다. 물론 그들에게 정확히 물어보진 않았다. 내가 정말 내 생각만큼 성실하고 열심히인 연인이었는지는. 사실 그런 것을 확인하고 정리할만큼의 예의도, 여유도 없는 이별들이었다. 지독하게도 예의가 없었다.

그리고 얄궂은 우연이지만 나는 항상 ‘여름’에 누군가와 헤어졌다. 여름이 시작될 때쯤 이별의 문이 열리고, 여름이 끝날 때쯤 이별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가을과 겨울에는 마음을 정리하고 봄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는 했다. 어쩌면 내가 여름을 유독 싫어하는 이유는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끈적한 땀과 눈물의 콜라보라니. 땀으로 푹 젖은 담요도 혐오스러운데 여기에 눈물로 푹 젖은 베개까지 더해지니 잔인함이 질척이는 기분이다.





그들은 언제부터 ‘그럼 안녕' 하고 돌아설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나와 함께 박수를 치며 ‘해피뉴이어!’를 외치던 1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지!하고 화이팅을 외치던 3월? 아니면 길가에 놓인 편의점 테이블에서 맥주 한캔을 따고 봄을 만끽하던 5월?

나에겐 지나간 시간 모두가 용의자가 된다. 범인을 밝힌들 살해당한 감정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매일 밤 쓸모없는 추리는 그나마 살아있는 내 자존감마저 죽이려 든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그런 추리를 하는 것이 무의미할만큼 그들과 나 사이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 속 한 곳이 싸늘하게 굳어진다.



그렇게 호된 8월이 지나고, 9월이 오면 나도 조금씩 정리가 되었던 것 같다. 계절 하나를 종이처럼 착착 접어 서랍안에 넣는 것처럼.

아직도 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여름까지 위세를 떨치던 클레마티스의 덩굴도, 여기저기로 손을 뻗치던 덩굴손도 조금씩 줄어드는 계절이 왔다. 이 마지막 클레마티스가 끝나고 나면 나는 말라버린 줄기들을 싹뚝 짧게 잘라 정리할 것이다.

한 계절 행복하게 함께 한 것들을 한순간에 정리한다는 게 아깝고 아쉽지만, 그렇게 해야만 겨우내 푹 쉬고 몸을 추스린 클레마티스가 다음 해 봄에 더 풍성하고 무성한 싹을 올려준다. 몇번의 경험덕에 알게 된 사실이다.





새로운 계절에 새로이 돋아난 귀여운 덩굴손은 누군가를 꼭 잡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이고, 마침내 화려하고 예쁜 꽃을 다시 피워낼 것이다. 끝나버린 감정을 잘라내버렸다고 나의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는다. 메말라버렸다고 생각하는 것도 지금의 감정 뿐이다. 그것은 반드시 새롭고도 열렬한 무엇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적절한 시기에 지지대를 세워 엉키고 쓰러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시들어버린 것들을 정리해야만 한다. 머무르지 않고 조금씩 옮겨 가보기로 한다. 그래도 되는 계절이, 드디어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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