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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Mar 06. 2021

산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

치유 글쓰기는 부지런한 청소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엄마는 언제나 청소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안방과 작은방, 마루, 마당까지 매일 아침 집안 곳곳을 쓸고 닦으셨다. 엄마의 성격이 워낙 깔끔하신 탓도 있지만 딸 셋과 아들 하나가 조금만 어질러도 금방 지저분한 티가 났기 때문에 엄마는 언제나 부지런히 정리하고 치우셨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어서 언제나 늦잠이 고팠다.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는 휴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바로 늦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원없이 늦잠을 자는 것,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나의 로망이자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휴일 아침에도 엄마는 평일과 다름없는 시간에 집안 청소를 시작하셨다. 우리 네 남매가 모두 학교에 가고 나서니까 엄마의 청소 시작시간은 보통 8시 정도였다. 하지만 나에게 주말 아침 8시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8시가 넘고 9시가 다 되어도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는 나는 언제나 엄마의 잔소리로 휴일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청소를 해야 되니까 그만 일어나라며 엄마는 끊임없이 나를 독촉을 하셨다. 안방을 청소하면서 한 번 말씀하시고, 마루를 청소하시며 또 말씀하셨다. 그나마 작은 방을 마지막에 청소하시는 건 엄마의 배려였다. 학교 가는 날도 아닌데 청소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나를 깨우는 엄마를 원망했다. 


마침내 작은방 문이 열리고 엄마의 목소리가 나의 이부자리 1m 앞까지 다가와야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조금 더 자게 내버려두지 왜 이렇게 일찍 깨우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깟 청소 하루 안 한다고 무슨 큰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청소를 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의 달콤한 늦잠을 방해하던 엄마의 아침 독촉은 학창 시절 내내 이어졌고, 20대 중반 서울로 직장을 옮기면서 드디어 나는 엄마의 잔소리와 작별을 하게 되었다. 독립을 하면 내 멋대로 하고 살며 청소는 절대 매일 하지 않을 거라는 다부진 다짐을 하며 나의 첫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독립 후 과연 나는 엄마만큼 부지런하게 집안을 가꾸거나 매일 청소를 하지는 않았다. 평일에는 아침에 눈 뜨면 출근하기 바빴고 퇴근 후에는 회사 생활과 서울 생활에 적응하느라 이리저리 치이며 감히 청소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청소와 빨래는 모아두었다 주말에 하는 것이지 주중에 하는 것은 아니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엄마의 아침 독촉이 없는 느긋한 주말 아침을 맞이하며 독립생활의 자유를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온전히 내 방식대로 내 뜻대로 독립생활을 누린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석 달,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문득 나의 행동에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식사를 하고 반찬 그릇을 넣을 때면 항상 그릇 주변을 깨끗이 닦고 넣었다. 이것은 식사 후에 뒷정리할 때 엄마가 항상 알려주시며 말씀하셨던 것이다. 물건은 사용하고 제자리에 두어야 했다. 이것 역시 엄마가 늘 이르셨던 말씀이었다. 속옷은 샤워할 때 휘리릭 손빨래를 했다. 그러면 주말에 할 빨랫감도 줄어들고 옷도 손상이 덜 가서 오래 입을 수 있었다. 집에 세탁기를 들이고도 속옷과 양말은 손빨래를 하셨던 엄마가 늘 그렇게 하시는 것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었다. 청소를 매일 하지는 않았지만 뽀얀 먼지가 쌓이는 건 눈에 거슬렸다. 엄마의 부지런함은 흉내낼 수 없었지만 내 나름대로는 청소를 하며 나의 환경을 최대한 쾌적하고 깔끔하게 가꾸었다. 


내 멋대로 내 방식대로 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마음을 먹었건만 독립 후 나의 생활이 내가 보아왔던 엄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정리하고 청소하는 엄마의 살림과 생활 방식이 내 생활에도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부지런한 엄마가 이해가 되었고 진심으로 엄마를 존경하게 되었다. 




치유 글쓰기를 하며 나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 마치 내 마음을 청소하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내 마음에는 먼지가 많이 쌓여 있었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쓸고 닦아내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오래된 상처와 아픔일수록 그것을 치유하는데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내가 만약 오랜 시간 동안 상처를 붙잡아 두지 않고 그때그때 달래주고 치유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내 손길이 자주 닿지 않아 먼지가 쌓여 더러워진 곳을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지저분해진 그곳을 청소하려면 때론 큰 마음을 먹어야 할 때도 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자주 살피고 들여다보지 않은 채 방치해둔 무거운 마음은 먼지가 되어 켜켜이 쌓이고 마침내 시커먼 먼지 덩어리가 되어 쳐다보는 것조차 두렵게 만든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 


친구의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다. 너무 와 닿는 말이라 여러 번 되뇌고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삶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은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에는 움직임이 있고 움직이다 보면 당연히 먼지가 생긴다. 살아있기에 만들어지는 먼지를 보며 불평하고 짜증을 낸다면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먼지를 보며 불평할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닦아내고 청소를 해 주어야 한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상처를 받고 또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처를 받은 마음도 상처를 준 마음도 먼지와 같이 가슴에 쌓이게 된다. 그런 기억을 마음에 계속 쌓아두기만 하면 먼지가 쌓이듯 마음 또한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공간이 된다. 그러니 내가 사는 공간을 청소하듯 마음에도 청소가 필요하다. 


치유 글쓰기는 부지런한 청소와 같다. 깨끗하게 마음을 청소하고 밝히며 쾌적한 공간으로 만들어 나의 영혼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가꾸는 마음의 청소가 치유 글쓰기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듯이 치유 글쓰기를 통해 내 마음에 쌓이는 먼지를 깨끗이 닦아내주어야 한다. 


치유 글쓰기를 하며 자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청소할 곳은 없는지 살펴본다면 영혼의 안식처인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을 선사할 것이다. 


청소 후 깨끗해지고 상쾌해진 공간을 마주하면 몸도 마음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내 마음에 쌓인 먼지는 없는지 어떤 무거운 마음을 닦아내야 하는지 구석구석 살펴본다. 그리고 청소를 하듯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밝고 가볍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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