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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Sep 24. 2021

엄마의 명절 졸업


“엄마, 이제 차례 안 지낼 거다.”


차례를 마쳤을 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생하셨다는 내 말에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코시국도 시국이고 새로 시작한 사업 때문에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올케가 9월 초에 출산을 한 관계로 명절 음식을 엄마 혼자 준비하셔야 될 것 같아 마음이 쓰였지만 엄마도 안 내려와도 된다고 말씀하신 터였다. 우리 집이 큰집이라 어린 시절에는 명절 음식을 정말 많이 했다. 명절이 끝나고도 한 두 주는 남은 음식들이 저녁 밥상에 한 동안 올라왔던 기억이 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는 집안 제사며 일 년에 두 차례 명절 음식까지 도맡아 다 해오셨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바뀌셨다.


“몇십 년 동안 했으면 이제 됐지, 뭐. 세상이 변했는데... 누구네도 명절에 산소만 다녀온다더라. 누구네도 음식 안 하고 상에 올릴 음식만 주문한다더라. 엄마도 올해부터는 안 하기로 했어. 그만큼 했으면 됐어.”


스무한 살에 시집 온 엄마는 얼굴도 못 본 시어머니 제사를 그때부터 몇 년 전까지 지냈다. 3~4년 전에야 매사로 올리고 나서야 두 번의 제사를 졸업하셨다. 동생이 결혼하고 며느리를 본 뒤로 엄마는 마음의 부담을 느끼셨던 것 같다. 맞벌이를 하는 며느리에게 제사나 명절 음식을 하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음식을 해도 많이 먹지도 않고, 언니들도 엄마 집에 와서야 조금 먹지 예전처럼 바리바리 싸가지도 않았다. 나도 혼자서 잘해 먹지 않는 터라 엄마가 싸주는 음식도 덜어내고 한 끼 해결할 정도만 챙겨 왔다. 이런 일이 몇 년 동안 지속되자 엄마도 이제 음식 하는 재미와 보람도 없어지셨을 것이다. 무엇보다 엄마도 나이가 들어가니 젊었을 때처럼 하루 종일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음식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거다.


"엄마, 잘했어. 너무 잘했어. 엄마도 이제 편하게 지내. 명절 음식 해 봐야 누가 먹는다고. 진짜 잘했어."


지금까지 50년 넘게 명절을 지내온 엄마의 명절 졸업 선포가 나는 반가웠다. 엄마의 맛깔난 명절 음식을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게 아주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제 엄마도 명절에 쉴 수 있다는 게 더 기뻤다.  


엄마는 어떤 기분일까?

모르긴 몰라도 엄마도 분명 기쁘실 거다. 엄마의 목소리에서 그동안 짊어져온 무거운 책임감을 벗어던진 홀가분함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엄마,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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