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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Oct 08. 2024

소박하고 단순하고 따뜻한 휘게의 나라 덴마크

휘겔리한 한 순간만 있어도 그들은 쉽게 '행복하다' 말한다

'참으로 행복해지고 싶으면 집안에 머물러라.'는 그리스 속담이 있다. 


집은 우리에게 건물이나 공간과 같은 외형적 형태뿐만 아니라 휴식, 편안함, 충전, 안식처 같은 내적 의미도 포함한다. 아무리 멋진 여행을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올 때면 '그래도 집이 제일 편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는 행복연구소(Happiness Research Institute)가 있다. 이곳은 민간 연구 기관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인간 행복의 원인과 효과에 대해 탐구하는 곳이다. 마이크 비킹은 행복연구소의 CEO이자 덴마크 세계 행복 데이터베이스 연구 부교수이기도 하다. 


매년 발표되는 세계행복지수 순위에서 덴마크는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행복연구소 CEO 비킹은 여러 나라의 기자들로부터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그의 저서《휘게 라이프》에서 덴마크 국민들이 행복한 이유는 '휘게(hygge)' 때문이라고 답한다. 


인터넷에 덴마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휘게'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휘게는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하는 덴마크어다. (출처: 위키백과)


그의 설명에 따르면 휘게는 분위기나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느낌, 집에 머무는 느낌, 안전한 느낌,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 그래서 긴장을 풀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이브에 잠옷을 입고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는 것, 좋아하는 차를 마시면서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것, 여름휴가 기간에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우는 것이 모두 휘게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소박하고 평범하고 일상처럼 느껴진다. 그런 일상은 우리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그렇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휘겔리(휘게의 형용사형)한 단 한순간만 있어도 쉽게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세련되고, 화려하고, 새것은 휘게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단순하고, 오래되고, 손 때가 묻어 있는 것들. 이런 것이 휘게와 더 가깝다고 한다. 덴마크 사람들이 카페나 레스토랑을 선택하는 기준도 음식 맛이 아닌 벽난로가 있는 휘겔리 한 장소를 더 선호한다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휘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짐작이 간다.


덴마크 사람들이 이토록 휘게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르웨이어 '휘게'는 '웰빙 well-being'이라고 한다. 웰빙은 몸과 마음의 편안함과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를 뜻한다. 덴마크 사람들이 휘게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과 삶의 균형이야말로 행복의 최우선 가치라고 믿기 때문이다. 직장 일아무리 바빠도 3, 4시면 퇴근을 하고,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행복을 느낀다. 


추운 겨울날 가족 또는 친구들과 따뜻한 벽난로 주위에 앉아 진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몇 년 전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SNS에 도배된 소확행은 시간을 쪼개어 해외여행을 가고, 호캉스를 즐기며, 명품을 자랑하고, 각종 고급 취미로 인증사진을 올려야 완성되는 것처럼 보였다. 내게는 그런 것이 전혀 소소해 보이지도 않고, 확실한 행복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덴마크인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자신과 소중한 이들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휘게'를 위해 온 정성을 다하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편안함, 안락함,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보내는 하루 중에서 단 한순간만이라도 이런 작은 행복함을 느낀다면 그것이 진정한 휘게이자 웰빙이고 소확행이 아닐까?


나에게 있어 휘게는 이런 느낌이다.


-추운 겨울밤에 꺼내 신는 포슬한 수면 양말

-자기 전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

-주말 아침의 고요한 도로

-엄마가 차려주신 소박한 밥상

-조카의 재롱을 보며 함께 웃는 가족들과의 시간


이런 것은 돈이 들지도 않고 특별히 공 들일 일도 없다. 그저 이런 순간에 '행복하다'라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마이크 비킹이 말했듯이 행복은 거창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닌 작고 소박하지만 따스하고 편안한 느낌이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행복이 뭐 별 건가?

작고 사소한 것에도 행복하다고 말해버리면 정말로 행복한 거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말해보자.

"아, 나 오늘 정말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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