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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Dec 27. 2020

비로소 홀로서기

마흔에야 시작한 너무 늦은 홀로서기

선택과 책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혼자서는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운 일을 맞닥뜨리게 된다. 

선택도 내 몫이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분명 내 몫이다. 하지만 무언지 모를 두려움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순간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에 쐐기를 막아줄 누군가를 찾게 된다.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 나설 수도 있고 평소에 고민을 나누는 선배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를 찾아 나설 때는 분명 자신의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게 될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 내 고민에 대해 명쾌한 답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내 삶을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언을 건네는 이들은 진심으로 상대의 고민을 듣고 해결방안을 찾아볼 것이다. 그렇지만 인생의 주사위는 각자의 손에 있고 그것을 던져야 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상대방이 나를 위해 조심스럽게 건네는 조언에는 그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이 나의 그것과 비슷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분명 더 많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도 그랬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내 삶의 문제 앞에서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봤지만 결국 선택은 나의 몫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나의 상황과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것도 나 자신이다. 


2, 30대 때의 나는 나를 믿지 못했다. 내가 내리는 선택은 어쩐지 오답일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내 선택보다 더 나은 선택을 내려줄 것만 같은 이들을 찾아 나섰다. 다른 이들의 의견에 내 생각을 맞추며 내 선택을 합리화를 했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나는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나의 선택을 다른 이에게 미뤘던 것이었다. 


내 삶을 온전히 책임을 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는 뜻이고 이것은 성공만 얻으려는 과도한 욕심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욕심만 앞선 채 선택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려 했다. 


비로소 홀로서기


40대가 되어서야 젊은 날의 욕심과 무책임함이 보였다. 부족하고 모자랐던 나의 젊은 날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내 삶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했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그제야 내가 원하는 것이 보였다. 지난한 2, 30대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진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과 꿈을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선택하고 책임을 질 때 진정한 홀로서기는 시작된다. 20대에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이도 있고, 나처럼 40대가 되어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꿈과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는 이들의 홀로서기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고 응원받아 마땅하다. 


나이가 몇이건 홀로서기를 선택한 나와 당신을 열렬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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