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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Dec 14. 2020

일요일 밤 12시에 떡볶이를 먹으며 하는 생각

월요일 출근 걱정 없는 밤

일요일 밤이 되었다. 

평소 같으면 월요일 출근을 걱정하며 부랴부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을 시간이다. 그런데 휴원으로 인해 월요일 출근이 없는 일요일 밤을 맞이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유난히 그랬다. 


인간은 금방 환경에 적응하기에 매일 아침 출근을 하지 않으니 기상시간이 점점 늦춰졌다. 평일에 늦게 일어나 하루를 짧게 보내는 것이 왠지 부끄러웠다. 출근은 하지 않지만 기상시간을 규칙적으로 해야 할 것 같아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일요일 밤 11시, 인터넷 검색도 멀리하고 유튜브 보기도 멈추고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았다. 잠이 들 것 같았다. 생각을 멈추려고 노력하며 잠에 빠져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잠이 들지 않았다. 분명히 졸린 것 같았는데 자려고 하니 정신이 말똥말똥 해지는 것이다. 생각 하나가 떠오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다.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정신은 더 말똥 해졌다. 잠은 이미 달아나 버렸다. 허탈해하는 순간 허기가 느껴졌다. 허기는 모든 생각을 멈추게 만들었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일어나서 뭐라도 먹을 것이냐? 아니면 그냥 잠이 들 때까지 계속 눈을 감고 있을 것이냐?' 


나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떡볶이 재료를 꺼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식인 떡볶이를 만들며 그렇게 신나 보기는 올해 들어 처음인 것 같았다. 빨간 국물이 보글보글 끓을 때 간을 보았다. 내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근래에 만든 떡볶이 중 단연코 최고로 맛있었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시간 따위 잊어버리고 그릇에 떡볶이를 옮겨 담았다. 


일요일 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떡볶이를 만들어 먹기는 내 평생 처음이었다.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요일 밤에는 언제나 월요일 출근을 걱정했다. 늦잠을 자 혹여라도 지각을 할까 봐 언제나 불안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음에도 나는 언제나 긴장을 놓지 못했다. 출근하기 전날 밤은 야식도 피해야 했다. 다음 날 퉁퉁 부은 얼굴로 회사에 얼굴을 들이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지난 20년간 내게 금지했던 그 모든 금기 사항을 과감히 깨뜨렸다. 그리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맵고 달콤한 떡볶이를 행복한 마음으로 배불리 먹은 것이다. 


그래, 출근도 안 하는데 늦게 일어나면 좀 어떠랴! 마음껏 게을러져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얼굴 좀 퉁퉁 부으면 또 어떠랴! 내일도 집콕 신세라 만날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월요일 출근 걱정이 없는 일요일 밤, 지난 20년 동안 노심초사했던 나에게 최고의 보상을 오늘에서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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