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를 맛보다
돌아보면 학창 시절에는 또래 친구들과 나 사이에 커다란 차이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성적이야 1등부터 꼴등까지 구분이 되기는 했지만 똑같이 생긴 교복을 입었고, 머리 스타일도 비슷했고, 가방 크기도 비슷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같이 도시락 까먹을 때도 장벽이라는 것은 1도 느끼지 못했다. 공부 잘하는 친구야 머리가 좋거나 과외를 받거나 잠을 안 자고 공부를 하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공부가 재미없었으니까 성적이 안 좋은 건 당연하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대학 진학을 하며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과의 관계가 바뀌었다.
정말 친했던 단짝이 아닌 이상 다른 지역으로 대학을 간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대학생활을 할 때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비슷한 유행의 옷을 입었고 교내 학생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시험기간에는 공부를 했고 물론 나보다 더 열심히 한 친구들은 장학금을 받았다. 나는 수업보다 아르바이트를 더 열심히 했기 때문에 장학금과는 거리를 두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장학금도 받는 분들이 있을 텐데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졸업반이 되면서 여러 부류로 친구들이 나누어졌다. 공무원 준비를 하는 친구들, 각종 자격증과 '사'자가 들어가는 류의 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들,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 금융계열로 취업을 위한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부류로 또 나뉘었다.
이 모든 것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력을 살려서 유통 서비스업으로 취업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와 친구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는 없는 듯 보였다.
그런데 30대가 넘어가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나와 친구들은 차이가 많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혼자가 되었다. 혼자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튜브도 보게 되고 이것저것 배우며 시간을 보낸다. 특히 유튜브를 보면서 나는 내 또래 혹은 나보다 더 나이가 어린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나와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하나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이 나는 없고, 그들이 쌓아놓은 단단한 커리어가 나는 없고, 그들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정보를 나는 가지고 있지 않는 거다.(그렇다고 나를 비관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거다.)
또래 집단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혼자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니 지금의 내 처지가 망망대해에 뜬금없이 불쑥 솟아있는 무인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뜻밖에도 내 눈앞을 가리고 있던 뿌연 먼지를 거두어낸 것처럼 그제야 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집단이나 단체에 있을 때는 다들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정보를 얻고 나누기 때문에 서로 간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비교해보아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속에서만 살던 물고기가 얼떨결에 퍼드득 물 위로 솟구쳐 올라 물 밖의 세상을 잠시라도 경험했을 때는 화들짝 놀라게 될 것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낯선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낯섦이 나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방향에서 자신을 볼 수 있고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의 공기를 느끼며 그곳에서 내가 적응할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한 달이 되었다.
내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 작가로 신청을 하고 통과가 되었지만 이렇게나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이렇게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은 미처 몰랐다.
이제 겨우 한 달이 된 브런치 작가로서 브런치에 글을 쓰며 내가 느끼는 기분이 꼭 그런 것 같다.
미지의 세상에 조심스럽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전에 경험하지 못한 낯섦이 주는 신선함과 호기심과 놀라움을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을 통해 매일 발견하고 느끼고 있다.
물속의 세상이 다인 줄 알았는데 나는 물 위의 공기를 처음으로 맛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