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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Dec 11. 2020

치킨 한 마리와 맞바꾼 비굴함

가족이니까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 조치에 따라 벌써 여러 차례 휴원을 했다. '휴원 = 무급'인 계약직 강사이기 때문에 출퇴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쉴 수 있는 휴원이 더 이상 반갑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긴축재정을 스스로 시전 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데 12월 3주간의 휴원 소식은 내 생계를 위협했다. 


휴원 결정이 내려진 날 나의 스트레스 지수는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암담했다. 단기 알바라도 구해서 용돈이라도 벌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가,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봐 걱정이 되어 가만히 집에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질수록 마음은 답답하고 기분은 처졌다. 우울함이 급작스레 찾아왔다.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와중에 치킨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치킨이 떠오르면서 맥주 한 잔도 함께 떠올랐다. 치킨과 맥주라면 나의 이 우울함이 조금은 해소될 것 같았다. 


그런데 월급을 받기 전이라 통장 잔고가 아슬아슬했다. 신용카드가 있지만 다음 달 월급 80%가 날아가버린 마당에 치킨 때문에 신용카드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이, 안 먹고 말지!'라고 마음속으로 포기하며 말을 뱉었지만 이미 떠올려버린 치맥의 유혹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순간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실행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이미 신세도 많이 졌고 나의 밑바닥까지 다 보여준 우리 가족이지만 치킨 한 마리가 먹고 싶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자존심은 진작에 내려놓았지만 어쩐지 내가 너무 비굴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치킨이 정말 먹고 싶다면 사 먹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 머릿속에 가족이 떠올랐다는 건 치킨을 핑계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마주하고 있다. 너무 답답하고 속상한데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 무거운 마음을 조금 덜어내고 싶었다. 비굴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내 무거운 마음을 덜어 내기로 했다. 


가족 단톡 방을 열고 글을 남겼다. 내일부터 휴원이라 3주간 일을 못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들 걱정을 해 주었다. 그 기세를 몰아 본론을 꺼내었다. 최대한 가볍게.



문자를 올리자마자 큰언니가 답문을 보냈다. 큰언니의 넓은 아량으로 나의 비굴함과 부끄러움이 조금 가벼워졌다. 사실은 단톡 방을 열고 몇 번이나 고민을 했었다. 내가 고민했던 시간보다 더 빨리 대답을 준 언니가 너무 고마웠다.  


'그래, 조금 비굴하고 부끄러우면 또 어떠랴? 덕분에 나를 생각해주는 가족들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으니.' 


그 날 저녁 언니 찬스로 얻은 치킨을 주문해서 먹었다. 언니의 사랑이 담긴 치킨을 맛있게 먹으며 다짐했다. 이 시간이 지나 내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언니에게 치킨 값을 두 배로 갚겠다고.


어렵고 힘든 시간이지만 가족이 있어 견딜 수 있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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