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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Dec 11. 2020

이상한 면접 제안

"네? 일단 와서 보라고요?"

3주간의 장기 휴원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에 돈이 되는 건 무엇이든 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 다짐의 첫 번째 행동은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하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회사에 지원을 하기도 했지만 혹여 나의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보기 위함이었다. 


대단한 스펙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도 꽤 많기에 인사담당자에게 매력적인 이력서는 아니다. 그나마 아주 약간의 매력 어필을 하기 위해 포토샵의 힘을 빌린 인상 좋아 보이는 증명사진을 찍어둔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럼에도 아무도 연락을 안 주면 어떡하나 하며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공개 설정한 이력서가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몇 군데서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 대체로 교육 분야에서 연락이 왔고 전화 또는 화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마음에 속 드는 회사와 일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내 나이에 갈 수 있는 회사와 업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현실 파악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아프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이력서에 생년월일을 기입해야하니 연락 온 인사담당자들의 공통멘트가 "나이가 조금 있으시고, 40대가 넘으셨으니."였다. 나름 동안이라고 많이 듣는 편인데 이제 직장을 구할 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괴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틀 전 저녁 7시가 넘어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늦은 시간에 낯선 번호로 온 전화라 받지 않을까 하다가 혹시나 싶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이 00 씨죠? 구직 사이트에서 이력서 보고 연락드렸어요."


젊고 씩씩한 목소리의 여성이었다.


"네, 맞습니다."


나는 짧게 대답하고 내게 전하려는 정보를 받아 적기 위해 펜을 들었다. 


"저희는 강남 00에 있는 사무실인데요, 면접 제의를 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이 말에 내 머릿 속에는 물음표가 하나 떠올랐다.


'강남 00에 사무실이 얼마나 많은데, 그중 하나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지?'


내 마음속 물음표를 알아챘는지 전화를 건 여성은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저희는 부동산 관련 재테크 정보를 알려드리는 곳인데요, S그룹 임원이나 고위 공직자 분들을 고객으로 모시고 있어요. 저는 38살에 직장을 그만두고 여기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지금은 연봉 1억을 넘게 벌고 있어요."


마치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분의 말을 들으며 또 다른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부동산 정보? 나는 부동산에 ㅂ도 모르는데.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 임원을 고객으로 가졌다는 게 이 업체를 신뢰할 조건이 되는가? 본인이 직장을 그만두고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게 내가 직장을 구하고 있는 것과 무슨 연관성이 있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 분은 내가 필요한 정보는 하나도 주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내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 이야기를 마치자 이번에는 더 황당한 이야기를 던졌다.


"직접 와서 보시면 저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아실 수 있으실 거예요. 내일 면접 가능하세요?"


맙소사!

회사 이름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근무 시간, 근무 형태, 급여 등의 기본적인 정보도 전혀 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직접 와서 보라니? 난생처음 들어보는 면접 제안이었다. 


나 역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보기도 했고, 영어 캠프 디렉터를 하면서 원어민과 한국인 교사와 스텝을 고용하기 위해 수차례 면접을 제안하고 진행해 봤지만 이런 식의 제안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또한 면접 제안을 한다는 것은 구직자와 회사가 잘 맞는지도 알아봐야 하기 때문에 구직자에 대한 질문도 빠뜨릴 수 없다. 나에 대한 건 하나도 물어보지 않은 이 분은 나의 무엇을 알아보고 전화를 주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도 그즈음에서 그냥 "됐습니다."하고 통화를 마무리하면 되었을 텐데 그만 한 마디를 하고 말았다. 


"제가 필요한 정보는 거의 주신 게 없는데요, 면접을 보러 가는 걸 결정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의 대답이 상대의 시나리오에 없었던지 밝았던 목소리에 약간의 기분 상함이 포함된 대답이 들렸다. 


"어떤 정보가 필요하시죠?"


엥? 이건 또 무슨 얘기지? 이 사람은 구직자가 필요한 정보를 정말 모른단 말인가?


나는 참 멍청하다. 그만하면 되었을 텐데 질문에 또 성실하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회사명도 얘길 안 하셨고, 정규직인지 계약직 인지도 얘기를 안 해 주셨어요. 근무 시간도 말씀을 안 해주셨고요."


그제야 상대는 간략하게 내가 문의한 정보를 짧게 주었다. 그리고 다시 덧붙였다. 일단 와서 보라고. 뭘 보라는 건지 나로서는 의아했다. 사무실 규모를 보라는 건지, 어떤 일을 하는지를 보라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봐야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잘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신의 설득에 내가 넘어가지 않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상대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갑게 바뀌었다.   


"네, 그럼 생각해 보시고 핸드폰으로 연락 주세요."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하는 전화 통화에서도 표정은 읽히게 마련이다. 

내게 전화한 그분의 연봉이 그렇게 많아도 왠지 그 일은 하고 싶지가 않았다. 고객에게는 어떤 목소리 톤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신뢰를 주는 목소리와 태도는 아니었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 분이 전달하려고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무엇이었는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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