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지기 마야 Mar 21. 2021

일관성 있는 인간

사람은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한다. 나 또한 어떤 부분은 변하고 어떤 부분은 변하지 않는데, 오늘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한 가지를 얘기해 보려 한다.  




2021년 2월, 두 개의 회사에서 퇴사했다. 한 달에 한 회사에서 퇴사하기도 힘든데, 2월 중순과 2월 말 각각 다른 회사에서 과감히 퇴사했다. 


원래 직장이 집합 금지로 인해 휴원이 길어졌다. 12월 초에 네 번째 장기 휴원이 시작되었고,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상황이 불안함을 키웠다.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아 구직 사이트를 뒤졌다. 출근을 해서 노동을 해야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일은 코로나 시대에는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을 찾았다. 이력서를 공개하니 몇 군데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고 한 곳에 합격했다. 


학습 상황을 관리하고 코칭해 주는 업무이고 100% 재택근무였다. 열흘 간의 교육 후 본격적으로 업무에 들어갔다. 집에서 해도 되는 일이라 편하게만 생각했는데 업무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이건 내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업무 강도가 너무 세었고, 맡아야 하는 학생도 갑자기 늘어났다. 교육받을 때는 몰랐던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한 달에 벌 수 있는 수입이 예상되었다. 구직 공고에 나와 있는 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학생과 학부모 통화가 연결되어야 수입으로 인정되는 구조인데, 내가 전화를 아무리 많이 해도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겁 없이 덤볐다가 큰 코 다친 것이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나이기에 나를 담당하는 파트장에게 바로 얘기를 했다. 그런데 내가 그만두겠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만둘 수도 없었다. 후임을 뽑고 교육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일을 계속해야 했다. 1월 둘째 주에 그만두겠다고 얘길 했는데 2월 10일에야 업무를 종료했다. 


두 번째 퇴사는 원래 직장의 계약기간이 끝난 2월 28일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1년을 꼬박 채우지 못했지만 2019년 1월부터 근무한 직장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회사 대표님은 재계약과 다소 파격적인 제안까지 했지만,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1년을 더 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당당하게 퇴사를 했다. 


공교롭게도 1월 셋째 주부터 2월 10일까지 투잡을 뛰느라 정말 힘들었다. 원래 직장 업무가 3시면 끝났기 때문에 퇴근과 동시에 두 번째 일을 시작했다. 퇴근과 동시에 출근이었다. 덕분에 내 몸은 피곤에 찌들었고 컨디션은 바닥을 쳤다. 고생은 했지만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 번째, 불안함에 선택하지 말자.

두 번째, 돈 때문에 선택하지 말자.

세 번째, 내 몸을 귀하게 대하자.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다는 것도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 


직장인이 퇴사를 결심하면 보통 직장 생활을 하면서 1년 동안 퇴사 준비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경제적으로든 커리어 향상을 위해서든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퇴사 준비를 해야 된다는데, 나와는 참으로 먼 이야기다. 


20대 후반에 첫 직장에서 퇴사를 결심하고 회사를 떠나기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30대 후반, 미국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에 들어올 때도 그랬다. 퇴사 통보를 하고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하기까지 넉 달 정도 걸렸다. 마음은 당장 그만두고 싶었지만 사정상 그럴 수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버텼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퇴사를 할 때 바로 이어서 출근할 직장을 정해 두었던가? 아니,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 당연히 이번에도 그랬다. 지난 2월에 퇴사를 하면서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한 가지 깨달았다. 


'아, 나란 인간이란 이토록 일관적이구나.'


이번 퇴사도 전혀 계획적이지 못했다. 치밀하지도 못했고 1년을 내다보며 준비하지도 못했다. 퇴사를 준비하기 위해 1년을 더 다녀야 할까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나는 그런 인간이 될 수 없었다. 절대로.




퇴사에 있어서 나는 참으로 일관성이 있는 인간이다. 이런 점에서 사람은 참으로 변하기 힘든 존재라는 것에 한 표를 던진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하며 머리칼을 움켜쥐고 괴로워할 생각은 없다. 그냥 나는 이렇게 타고났을 뿐이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 건 치밀하게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어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거다. 이것도 내공이라면 내공이 되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개똥철학도 가지게 되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책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나 할까?


누군가는 철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무모한 용기를 가졌다고 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양면을 가지고 있으니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단지, 내 선택을 존중하고 그러한 선택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믿어 줄 뿐이다. 선택을 한 그 시점부터 방법을 찾으면 된다. 결국 내가 살아야 하는 내 삶이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덜 치밀하고 덜 계획적이어도 잘 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퇴사만큼은 20년째 일관성 있는 나란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이제는 퇴사하지 않기 위해 다음 트랙으로 용기 있게 나아간다. 그런 나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세이는 36.5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