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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Mar 12. 2021

아무도 나에게 상처 줄 수 없다

이젠 나를 사랑해도 괜찮아

'아무도 내게 상처 줄 수 없습니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상처 줄 수 있습니다.'


바이런 케이티의 <나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는가>의 첫 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 글귀를 읽고 나는 선뜻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내게 상처 줄 수 없다고?'

'오직 나만이 나에게 상처 줄 수 있다고?'


이 말의 뜻을 이해해 보고자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여러 번 읽어보았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를 힘들게 했고 아프게 했고 상처 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도 내게 상처 줄 수 없다면 내가 아파했던 그 시간과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 많은 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나만 상처 받았다고 말하지 않겠다. 살아오면서 나 역시 가까운 이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상대가 아파할 걸 알면서도 모진 말을 뱉기도 했고, 때로는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를 줘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한 적도 많았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나는 그들에게 상처 준 사람이었다.


상처는 혼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가 있으면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피해자가 있으면 당연히 가해자도 있다. 그런데 케이티의 말은 가해자도 나고, 피해자도 나란 뜻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이해하고 싶었다. 만일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를 옭아매고 있는 무거운 생각과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매달렸다. 그만큼 간절히 이해하고 싶었고 내 삶이 되길 원했다. 




케이티는 질문을 통해 생각의 방향을 바꾸게 하는 영성 리더다. 그것을 작업(The Work)이라고 한다. 자신이 불편하게 느끼는 사건이나 감정에 여섯 가지 질문을 하고 대답을 쓰게 한다. 그것을 스스로 읽어 보게 하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질문 네 가지를 하며 생각과 감정을 분리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그녀의 책 <나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는가>에 자세한 순서와 방법이 나와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노트를 펼치고 내가 화나고 불쾌했던 일을 하나하나 적어보았다. 글을 써내려 가면서 내가 느꼈던 수치심과 분노가 그대로 느껴졌다. 때로는 글을 쓰면서 나란 인간이 참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도 진짜 내 마음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화내고 싶고 싫다고 거절하고 싶었던 지난날, '유치하게 왜 그러니?'라는 말에 눈치를 보며 솔직한 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내 감정은 더 복잡하게 꼬여 가슴 한 가운데서 꽁꽁 매듭지어진채 무겁게 막혀 있었던 것이다.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면 자신에게 100% 솔직해져야 한다. 유치하면 유치한대로 억울하면 억울한대로 자신에게 솔직하게 다 털어놓아야 한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 내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상처라는 것을 말이다. 싫다는 말을 못 한 것,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것, 용기가 없어서, 무서워서, 두려워서, 괜찮은 척, 나를 외면했던 그 모든 순간이 사실은, 내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싫은 걸 싫다고 용기 내어 말하면 나는 상처 받지 않는다. 

두려운 걸 두렵다고 말하면 나는 상처 받지 않는다. 

하고 싶지 않은 걸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나는 상처 받지 않는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면 나는 상처 받지 않는다. 


내가 나에게 상처 주는지도 모른 채 나는 나의 마음과 반대되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용기가 없어서든, 잘 보이고 싶어서든,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나에게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낸 생채기에 나는 아파하고 괴로워했었다.


케이티의 작업(The Work)을 통해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나에게 솔직해지면 적어도 스스로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표현했을 때 행여라도 유치해 보이지는 않을지, 우스워보이지는 않을지 걱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치하다고 생각하고 우스워보인다고 생각하는 건 누구의 생각일까? 나의 진심일까? 아니면 나의 감시자일까?


치유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는 자신의 진심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온전히 마주해야 한다. 자신의 진심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그 어떤 의심이나 두려움은 필요하지 않다. 그저 솔직하게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가끔 이 작업을 한다. 내 마음에서 의심이 들고 두려움이 밀려올 때 노트를 펴고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한다. 나의 진심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나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나는 나의 마음을 열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인정해주며 사랑해준다. 


그리고 이해한다. 

아무도 나에게 상처 줄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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