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의 미국 대학 밴드 도전기

2025-06-05 목요일

by may

내가 대학 시절 가장 열심히 했던 동아리는 학과 밴드 동아리였다.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라, 사람들에게 어떠한 형태의 감정이든 전달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지만 가장 좋았던 건 밴드를 하면서 얻게 된 좋은 인연들과 추억들이었다. 미국 교환학생 생활에서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이런 소중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 동아리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Hello! I’m putting together a project band for the spring quarter!

글을 올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함께 하고 싶다는 친구들을 구했고, 곧바로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목표는 학기 마지막 동아리 행사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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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매주 학교에서 차로 15분쯤 떨어진 연습실에 모여 연습을 했다. 마지막 곡인 'Welcome to the black parade'는 고음 파트가 워낙 많아서 연습이 끝나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기도 했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가사를 외우는 일이었는데, 가사가 직관적이고 스토리가 있는 'Sk8er Boi'와 달리 문장이 길고, 단어도 어렵고, 가사가 반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발음이 이상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다른 악기 세션들은 말을 할 일이 없으니 교환학생이더라도 티가 나지 않지만, 보컬인 나는 모든 노래가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영어로 10분 동안 발표해 본 경험도 없는데, 20분 넘는 시간 동안 노래하고 중간중간 멘트를 하며 공연을 이끌어야 한다니! 관중석에서 누군가가 개그라도 친다면 그를 이해하지도 못할 터였다. 너무 걱정이 되었다.





대망의 공연날이 되었다. 대부분이 UCI 현지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 관중석을 바라보니, 그동안 애써 눌러두었던 압박감이 밀려왔다. 많이 떨렸지만 우리 팀을 응원하러 관중석 한쪽에 앉아있는 교환학생 친구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국에서 같이 밴드부를 했던 친구들은 "이제 미국에까지 진출한 거냐"며 장난 섞인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렇게 우리 팀의 차례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공연은 눈 깜짝 할새로 지나갔다. 무대에 오르자마자 첫 곡으로 Sk8er Boi를 불렀는데, 청중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리듬을 타는 사람들, 후렴을 따라 부르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무대를 함께 즐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부터는 발음에 대한 걱정도, 실수에 대한 두려움도 모두 사라졌다. 단지 공연을 더 재밌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팀 소개를 마친 뒤 두 번째 곡으로는 Paramore의 Still into you를 불렀다. 이 곡 역시 많은 이들에게 익숙했던지,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무대 아래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 한쪽이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마지막 곡까지 모두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 나도 이제 이 학교의 일원이구나.”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내가 외부인이라는 감각을 완전히 지우기는 쉽지 않았다. 현지 학생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해도 그들 사이에는 내가 공유하지 못하는 시간과 경험이 있었고,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 나 역시 마음 한편에서는 ‘어차피 곧 헤어질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 데 스스로 선을 긋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교환학생과 현지 학생이 구분 없이 한 팀이 되어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 위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호흡을 맞춘 경험은 그런 거리감을 조금씩 허물어주었다. 그리고 관객들이 우리의 공연을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이곳에서 분명한 역할을 해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연이 끝난 뒤, 우리보다 앞 순서로 무대에 올랐던 팀과 우연히 인앤아웃에서 마주쳤다. “Your stage was insane!”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웃고 이야기하는 순간, 이들과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일주일 뒤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이런 경험을 학기 초에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은 내 마음 한편에 작은 가능성을 남겼다. 언젠가 다시 미국에 오게 된다면, 혹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게 된다면, 또다시 이런 소중한 경험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날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나에게 그런 미래를 상상하게 만든 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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