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담아, To my Grandpa!

보스턴에서 보내는 엽서

by Maybe


깊은 그리움은 봄보다 먼저 온다.

한국은 벌써 만개한 벚꽃 소식이 한창이다.
하지만 보스턴은 여전히 겨울을 벗어나지 못했다.
체감온도는 영하,

롱패딩을 꺼내 입고 외출하는 날들이 반복된다.

작년 이맘때 외할머니께서 응급실에 입원하셨고,
올해는 처음 맞이하는 할머니의 기일이 다가온다.
그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아직도 외할머니께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했고,
혼자 시간을 보내고 계실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이미 눈물이 앞선다.

외할아버지는 나에게 아주 특별하고 커다란 존재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 바로 앞 동에 사셨고,
거의 함께 살다시피 했다.

가족들이 쉽지 않게 느끼는 다소 강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시긴 하지만... 나는 그런 눈치를 조금도

채지 못할 만큼 그저 나에겐 한없이 크고 따뜻한

멋진 어른이시다.

자라면서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할아버지처럼 나이 들고 싶다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마흔을 바리 보지만,

할아버지의 똥강아지라고 불리는 손녀다.

어릴 적-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거리낌 없이 조르던 아이였고,

(특히 회가 먹고 싶은 날이면,

일식당을 자주 데려가주시던 할아버지께 살살 녹는 회를 좀 사달라고 했단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당당히 찜해두던 철없는 손녀였다.
할아버지는 일곱 살이던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셨고,
나는 대신 그 대가로 용돈을 타는 재미에 빠지곤 했다.

항상 무언가를 배우는 데 열정이 있으셨던 분.
손녀가 알려주는 서투른 피아노 레슨시간,
그 자체를 즐기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한때 미시간 대학교 석사 과정에도

합격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국가의 제재로 인해 미국에 올 수 없게 되고 많이 슬퍼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손녀는 결혼해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 살고 있다.
할아버지가 꿈꾸셨던 그 땅에서.

그래서일까.
미국 생활이 버거울 때마다
“잘 살아야 한다”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힘이 빠지는 날엔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잘 살아야지.
할아버지의 손녀딸답게!







To. 많이 그리운 나의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처음으로 이렇게 편지를 써봅니다.

저는 이곳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정말 많이 그리워요.

그리울 때마다,
할아버지가 머무시는 곳에서
좋은 분들과 따뜻한 시간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해요.
할아버지가 제 외할아버지라서
저는 참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