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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Gwon Mar 28. 2024

돌아가신 분을 뵙다

삶과 죽음은 연장선에 있다. 일본 H 호스피스 병원에서 참관 중이던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니 몇 시간 전 돌아가신 환자 두 분이 계신데 뵙고 와도 된다고 하셨다. 한 분은 이제 막 옷도 갈아입혀드리고 화장도 곱게 해 드린 상태였고, 다른 한 분은 이제 병실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보통 다른 병원에서는 환자분이 돌아가시면 간호사가 아니라 용역업체를 불러서 곱게 화장을 해드리고 정리를 하는데 여기서는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모두 한다셨다. 여태까지 한국에서 실습할 때는 병원에서 치료를 끝까지 받다가 돌아가신 분만 뵈었지, 호스피스에서 임종하신 분을 뵙는 건 처음이었다. 


한 분을 먼저 뵙기 위해 조금 긴장한 상태로 병실에 들어갔다.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신 것 같았다.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대답하실 것만 같았다. 환자분 손을 한번 잡아 보라 셔서 살며시 잡았는데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죽음과 달랐다. 이전에 봤던 임종 직후 모습은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결국 돌아가셔서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 거나, 부종 때문에 손발가락 끝까지 부어있거나, 여기저기 관이 꽂혀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인위적인 개입 없이 자연스럽게 돌아가신 분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나도 자연스럽게 죽으면 이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돌아가신 분을 뵈면서도 무섭거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따뜻한 손의 감촉에서 잔잔하지만 마음 깊이 삶과 죽음은 연속선 위에 있고, 삶은 유한하며, 죽음은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되새길 수 있었다. 


다른 한 분은 집으로 잠시 돌아간 가족분들이 오실 때까지 1층 임시 분향소에 모시기로 했다. 그곳은 가족뿐 아니라 다른 환자분이나 의료진도 와서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시신을 병실에서 임시 분향소로 옮길 때 같이 따라갔다. 일반적인 병원에서는 시신을 옮길 때 다른 환자들이 볼 수 없게 별도의 엘리베이터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 병원에서는 시신을 옮길 때에도 일반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고 하셨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길에 당연히 다른 환자분들도 돌아가신 분을 옮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병원에서는 삶과 죽음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돌아가신 분을 이동시키는 모습도 환자분들께 자연스럽게 보여드린다고 하셨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환자분들의 불안감을 덜어준다고 했다. 나 또한 죽으면 저렇게 정성스럽게 다뤄지겠구나 하고 안심되고, 사망한 뒤에 내 몸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으니까 덜 불안할 것 같았다.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으로 임종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삶을 잘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삶을 정리하는 데에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여러분이 한 달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면, 한 달은 여러분 인생을 정리하기에 충분한가? 한 달 내내 건강한 상태도 아니고 점점 기력이 다해 누워있어야 하는 시간도 많을 텐데. 가족과 못다 한 이야기도 하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도 만나고, 하던 일도 마무리 짓고, 재산도 정리하려면 한 달 일정은 꽉 찰 것이다. 


삶을 마무리하기에 적절한 기간이 정해져 있진 않다. 다만 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길다면 더 여유롭고 성숙하게 삶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국제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에서는 삶의 마지막에 대한 논의는 되도록 시간을 충분히 들일 수 있도록 암이나 중증 질환을 진단받은 그 시점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즉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시한부를 선고받거나 죽음에 임박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건강하고 아직 완치 가능성이 있을 때부터 미리 시작하는 것을 권장한다. 미국 완화의료 전문의 L은 인터뷰에서 ‘미국은 완치목적으로 치료를 받는 환자분이라도 내가 이렇게 힘들면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존적 고통으로 힘들거나, 정신적 또는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거나, 치료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잃거나, 이 치료를 할지 말지 고민할 때 완화의료팀이 개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완화의료팀이 개입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보면 사망하기 6개월 이전일 때가 많다고 했다. 완화의료가 개입한다고 해서 다른 의료팀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종양의학 팀이 일차적인 주치의를 맡아 치료를 하면서 완화의료팀이 협업을 하는 방식이다. 전 세계 웰다잉 지수 1위인 영국은 일반적으로 여명이 6개월 즈음 남았을 때에 호스피스를 권하긴 하는데, 최근 표적 항암제가 말기암에서도 효과가 있어서 환자 상태에 따라 호스피스를 권하는 시기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즉, 여명 자체보다는 질환이나 증상에 따라 호스피스를 권하는 시기가 다르다. 


예를 들어, 파킨슨병은 뇌 특정 부위가 서서히 변화하면서 진행하는 병으로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질환이다. 파킨슨병은 진단을 받더라도 사망까지 수년이 걸려서 말기 암에 비해 여명이 길다. 그래서 파킨슨병은 여명이 길게 남아있더라도 말기 암처럼 호스피스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완화의료를 시작하는 데에 명확하게 정해진 시점이 없다 보니 어떤 경우에는 완화의료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완치에만 전념하다가 시도할 치료가 다 끝나고 나서야 완화의료를 권유받기도 한다. 이런 경우 환자 입장에서는 너무 갑작스럽고 의료진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기도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할 수 있으려면 임종이 임박한 경우는 안되고 대화가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 그래서 더욱 완화의료를 시작하는 시점은 빠를수록 좋다. 


이러한 노력의 예시로 사전돌봄계획(Advanced Care Planning, ACP)이 있다. 사전돌봄계획은 생애 말기에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떤 치료는 받고 싶지 않은지 의식이 또렷할 때 미리 정해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말기 암환자들이 증상이 악화되면 자주 응급실에 방문하는데 사실상 응급실에서는 치료를 위해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 치료를 하려면 현재 상태를 알기 위해 기본적으로 피를 뽑고 그 외에도 내시경 검사를 하거나 관을 꽂아서 체액을 채취하는 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말기 환자는 치료를 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검사를 굳이 할 필요가 없고 몸을 찔러야 하는 고통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 검사를 하더라도 그 이후에 할 수 있는 처치는 연명의료뿐이다. 치료 효과 없이 임종까지 기간만 늘리는 의료처치를 ‘연명의료’라고 하는데 심폐소생술, 기도삽관, 혈액투석, 항암제, 혈압상승제, 인공호흡기, 체외생명유지술 등이 있다. 생애말 쇠약해진 몸에 심폐소생술을 하면 갈비뼈가 쉽게 부러지고 부러진 뼈가 다른 장기를 찌르기도 하며, 기도삽관을 하면 말을 하지 못해서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집요한 과잉진료를 두고 '필사적 종양학(Desperation Oncology)'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부작용은 차치하고 성공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데도 치료를 감행하는 것이다. 삶이 저물어 갈 때 점점 숨이 차고 정신도 온전치 못할 때가 있고 평상시와 다른 모습을 보여서 이를 처음 겪는 환자와 가족은 덜컥 무서운 마음에 응급실에 부랴부랴 오는 경우가 많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하느라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시기 전 한 달 동안 쓰는 의료비는 생애말 1년 의료비의 42.4%를 차지한다. 임종이 가까울수록 고강도 치료를 집중적으로 해서 의료비용이 급증하는 것이다. 임종 전 귀한 시간을 불필요하고 고통스러운 검사나 치료에 낭비하지 않으려면 미리 자신이 원하는 생애말 처치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의료진과 상의해서 문서화해놓는 작업이 바로 사전돌봄계획이다. 


미국에서는 완화의료 세부전문의 제도 내에 응급의료 분과가 있어서 가정에서도 말기 증상케어를 잘할 수 있고, 응급실에서 케어해야 할 부분을 효율적으로 맡아서 조치할 수 있도록 한다. 영국에서는 가정에서 임종하는 것을 국가적으로 장려한다. 임종기가 되면 간호사가 매일 방문해서 관리하고, 호스피스가 아닌 일반 병원에서도 환자들이 집에서 임종할 것을 장려하며 관련 연구를 활발하게 한다. 말기 환자가 예상치 못한 증상 변화에 놀라 응급실로 와서 원치 않는 모습으로 임종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리 환자와 가족에게 임종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처치도 철저히 교육한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환자 중 40%만 자택에서 사망한다. 즉 가정 호스피스 환자임에도 60%는 임종시점에 결국 가정이 아닌 의료기관에서 임종을 맞이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임종이 임박했을 때 과반수가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다시 의료기관에 재입원하는데, 환자들이 원하던 대로 가정에서 임종할 수 있게 의료, 사회, 경제, 문화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완화의료가 생애말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중요하다는 전국민적 인식이 필요하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수요도 높고 인식이 긍정적이라야 사전돌봄계획을 포함해서 가족, 의료진과 미리 임종기를 대비하는 논의가 원활해진다. 다행히 국내 완화의료가 환자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을 많이 해서 하루 환자본인부담금은 만오천 원 정도로 경제적 부담은 낮다. 그리고 아직은 호스피스 입원이 말기암 환자만 가능하지만 입원 가능 환자도 점차 확대하고자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암을 진단받고 완치를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치료하다가 더 이상 완치가 힘들다는 판단이 들면 그제야 호스피스를 권한다. 그래서 환자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고 버림받는다고 느끼며, 정작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것도 대기가 필요해서 환자가 당황하고 분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암을 진단하는 시점부터 미리 완화의료팀이 개입해서 호스피스로 부드럽게 연계되는 것이 당연한 과정이 되도록 의료진과 국민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웹툰작가 겸 유튜버인 기안84가 세계여행을 다녀온 영상이 큰 인기를 끌었다. 기안84가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할 때 현지 제사의식인 파마디하나에 참여했다. 파마디하나에서는 수년 주기로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어 깨끗한 천으로 다시 염을 한다. 유족들은 천으로 싼 시신을 한참 동안 끌어안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건넨다. 시신을 만지는 것을 부정 탄다고 생각하고 납골당이나 산소에서 시신을 직접 만지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하지만 먼저 떠난 사람을 추억하며 기린다는 본질은 같다. 마다가스카르 추모 문화는 우리처럼 엄숙하지 않고 하루종일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식사를 하며 죽은 사람이 남겨준 행복한 기억을 추억한다. 침울한 표정을 짓는 것이 오히려 실례가 된다. 죽음을 반드시 무겁게 다룰 필요는 없단 걸 알 수 있었다. 유쾌함과 슬픔이 공존하면서도 충분히 애도를 할 수 있었다. 이 영상에서 패널로 나온 연예인들이 서로 자신의 장례식은 어땠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송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평소 대화에서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원하는 이상형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장례는 어떻게 치르고 싶은지,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할지와 같은 이야기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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