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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최선을 다했다(feat.엄마의 갱년기)

by 마요 Aug 31. 2023


아직은 마흔아홉, 30년 전 드라마가 갑툭튀 했다


잊고 있었던 장면들이 갑자기 툭 생각날 때가 있다.

가령,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아침 드라마였던 '아직은 마흔아홉'.

'나도 언젠가는 마흔아홉이 될까?' '왜 마흔 살이 넘으면 아저씨들은 딴 아줌마랑 바람을 피우고, 와이프는 매일마다 울기만 할까?'

30년 전 본 그 드라마가 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을까?

마흔아홉이란 숫자가 강렬했기 때문일까?

아침드라마 소재인 '불륜'은 시간을 초월해 늘 화력이 세다. 정말 그 드라마가 있던 걸까? 싶어서 검색해 보니 정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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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아침드라마다.

중년 여성들이 겪는 삶의 기쁨과 갈등을 그린 드라마라니. 30년 전 그 드라마가 왜 갑자기 머리를 스친 걸까.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내게도 왔고, 어느덧 그녀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거다.



응답하라 1988, 덕선이 엄마 vs정봉이 엄마의 경년기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엄마와 정봉이 엄마도 생각난다.

갱년기를 앓던 덕선이 엄마와, 정봉이 엄마가 감정의 기복 때문에 힘들어하던 장면. 엄마들이 갱년기를 겪으며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가족들이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에 대해 나온다.

그때만 해도 내 갱년기가 그들과 다르지 않을 거란 건 꿈에도 몰랐다. 무엇보다 이렇게 빨리 닥칠 거라고는 더 생각 못했고, 가족들 모두 엄마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 일인 줄도 몰랐다. 참 너무 많이 몰랐다.  

폐경 진단 후, 갱년기 증상이 생기면서 자율신경에 문제가 생겼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불균형으로 좀 잡을 수 없는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분노와 화로 바뀌었다.

몸이 쳐지기 시작하면서, 한없이 우울하고 평소엔 잘 안 나던 눈물도 어찌나 잘 나오는지.

"엄마는 너희들 시녀가 아니야! 엄마도 우리 엄마 아빠한테 소중한 딸이었어. 너희들 정말 엄마한테 이렇게 밖에 못해?"

살면서 한 번도 안 했던 말들이 가족들을 향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온갖 것들이 다 서운하고 속상한 미친 롤러코스터와 같은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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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덕선이 엄마 '이일화 여사'도 허구한 날 방구석에 누워있다. 갱년기 여파를 온몸으로 맞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렇게 침대에 누워 속수무책으로 터져 나오는 감정앓이에 당하고 만다.

이일화 여사를 일으켜 낸 사람은 딸 '덕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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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문역 앞에 팔보채 예술로 하는 집이 있다며 누워 있는 엄마를 일으켜 집 밖으로 나선다.

나는 왜 울 엄마한테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엄마도 첫 갱년기를 앓으며 참 많이 힘들었을 텐데, 살갑게 엄마를 대하고 이해하기는커녕 엄마를 피했던 것 같다. 괜히 엄마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참 별로인 딸이었다. 그러니 나도 내 딸이 덕선이처럼 왜 못하느냐고 말 못 하겠다. 내가 막상 이렇게 아파보니, 내게 못해준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 보다는 내가 못해줬던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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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엄마에게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참 따뜻한 덕선과 덕선이 엄마의 모습.

어쩌면 '갱년기'는, 따뜻한 가족의 힘을 다시 느껴보라는 중간 점검의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 낳고, 키우고, 남편 챙기느라 참 고생했어.
그 가정 지키고 버티느라 힘들었지?
이제 네 몸은 좀 쉬어가도 괜찮아.
네 감정이 시키는 대로 당분간은 활활 타올라.
그래도 괜찮아.
한 번은 멈추고 너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때,
앞으로 살아갈 남은 삶이 훨씬 더 괜찮아질 수 있지 않겠어?
누구든 언젠가, 이 과정을 꼭 한 번씩 거쳐가야 해.
 너만 유난인 거 아니야.
너무 네 감정을 자책하지 마.


요즘 스스로 내게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말 중 하나다.  태어나 나 자신에게 가장 뜨거운 위로를 건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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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보고 정말 많이 울었다.

내게 따스한 가족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일궈낸 가족이 이렇게 울타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다.




가족으로부터 위로받고 회복하는 갱년기


요즘 남편에게 장난으로 이런 말을 한다.

"내 갱년기 잘 챙겨주면, 당신 갱년기 정말 잘 챙겨줄게"

우리 남편은 이미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내 미안한 마음이 시키지도 않은 서툰 제안이 되곤 한다. 남편에게 언젠가 '갱년기'가 찾아온다면 나 역시 정말 따뜻하게 품어주고 싶다.

가족으로부터 위로받는 갱년기. 참 괜찮은 것 같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


갱년기를 앓고 있는 엄마가 있나요? 아내가 있나요?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보통의 경우라면 손. 발이 따뜻해야 하고, 머리는 차가워야 하는데, 갱년기가 되면 정 반대가 됩니다.

머리는 뜨거워지고, 손. 발은 너무 차갑고 시려요.

따뜻하게 잡아주면서 한 마디 해주세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


그 한마디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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