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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Aug 15. 2024

女子의 냄새

mayol@행화촌 12. 소월의 시와 훈민정음

 며칠 전에는 좀처럼 발길을 주지 않던 친구가 찾아왔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지 않아 안면이 어색하다가 정동의 중학교 시절부터 어울렸던 친구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도 같이 다녔고 지금까지 연이 이어지고 있으니 손님처럼 만난 사람들과는 대화의 격이 다르다. 한마디로 '두알친구'의 대화가 가능하다.

 친구는 20년이 넘은 병원 싱크대의 녹을 직접 제거하고 페인트칠을 했다는 얘기를 하고 나는 30년 된 내 차의 냉각수통을 직접 교체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세기 초 한글문학연구에 관한 대화를 하는데 친구가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나처럼 엉뚱한 짓을 하는 후배가 있다는 거였다.


 세종대황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부터 거의 450년이 지난 1800년대 후반까지 '한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었다. 훈민정음은 홀소리(모음) 11개와 닿소리(자음) 17개 등 총 28자를 유지하다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서 한글맞춤법통일안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 무렵, "ㅿ, ㆁ, ㆆ, ㆍ" 네 개의 자字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훈민정음'이라는 표현대신 '한글'이라는 표현을 공식 사용하면서 자음과 모음의 수도 홀소리 10자 닿소리 14자 등 총 24개의 자모음으로 축소해 사용하게 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현재 한글이 된 것이다.

 내가 20세기 초를 한글문학의 중흥기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무렵이 '한글'과 '훈민정음'이 교차되던 시기였다. 따라서 현행의 타이프로는 표기가 불가능한 기호들이 다량 발견된다. 김소월의 시 원본을 지금의 자판으로는 칠 수 없게 된 배경이다.

 당시의 잊혀진 문학작품을 발굴하는 작업에 항상 목마름이 있었는데 강점기 이후에 만들어진 한글 표준자판의 생태적 한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라진 네 개의 자모음은 고사하고 된소리마저도 표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따'를 'ㅅ다'로 표기하기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ㅅ'이 붙어 경음화되는 과정을 설명하려면 'ㅅ'과 'ㄷ'이 붙어있어야 하는데 내 컴퓨터의 자판으로는 [ᄯ] 표기가 불가능하다. 

 사라진 'ㅿ, ㆁ, ㆆ, ㆍ'자는 고사하고.


 어쨌거나 이런 갈증 속에 오랜 시간을 지내고 있었는데 친구가 전화한 후배의 이야기가 걸작이었다.

 이비인후과를 운영하면서 훈민정음의 자판표기를 특허출원했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 소리에 너무 놀라 여러 차례 무릎을 두드리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조만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주고 싶다. 

 내게는 묵힌 변이 빠지는 소식이어서 더없이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나는 28개의 자모음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반치음 [ㅿ]이나 아래아 [ㆍ] 등 훈민정음의 여러 발음들이 되살아난다면 외래어의 발음이나 발성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런 의미에서 김소월의 시 중에 지금의 자판으로 표기할 수 없는 시 몇 개의 지면을 스캔받아 그대로 올려 드리려고 한다. 타이핑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 자판으로는 표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석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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