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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May 01. 2024

북디자이너가 즐기는  멜버른 서점투어_ Ep.04

북디자이너 03/ 멜버른 여행 Ep 02

멜버른 여행 _  Episode 02


Ep. 01 멜버른으로 가는 기차, 11시간  https://brunch.co.kr/@maypaperkunah/168 



4박 5일간의 멜버른 여행.

11시간의 기차를 타고, 멜버른에 도착한 건 목요일 저녁이었다.


첫날은 영어튜터 다니엘과 저녁 약속이 있었기에, 서둘러서 호텔 체크인을 하고 호텔 1층에 있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7개월 동안 온라인으로만 만나고, 매일 목소리로만 피드백을 주던 다니엘을 대면으로 처음으로 마주하고 앉으니, 꿈인지 생시인지. 여기가 시드니인지 멜버른인지. 현실파악을 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아이들 앞에서 영어를 하려 하니, 더 정신이 없었다.


일단, 아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나는 다니엘과 좀 더 오랜 이야기를 나누고,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방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다음날 새벽 7시에 수영을 하고 9시에 밥을 먹을 것이라고, 꽤 알찬 계획을 세워놨다.


"그래"

"그러자"



둘째 날, 진짜 아이들은 새벽부터 벌떡 일어나서는 호텔 수영장에서 1시간 반정도 수영을 즐겼다. 모닝수영. 이게 된다고? 참 아이들스럽다. 하지만 나도 은근슬쩍 그 느낌을 느껴보고 싶었다. 수영복을 사야겠다 마음먹었다. 이 마음을 딸에게 전하니, "좋아! 오늘은 엄마의 수영복을 사러 가자!"


"그래"

"그러자"


외출준비를 하고, 조식뷔페에서 아침을 먹으며 이날 하루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기로 했다. 사실, 멜버른으로 오면서 아무런 계획을 잡고 오지 않았다. 호텔을 정하면서, 지도로 대충의 위치만 파악했을 뿐 3일간의 멜버른에서의 여행계획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기분 내키는 대로 어디든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날 아침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일단 오늘은 수영복을 사러 가자.' 그게 멜버른의 첫날의 계획이었다. 멜버른에 와서 수영복 쇼핑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계획이다.


우리는 일단 멜버른 시티를 구석구석 걸어보기로 했다.




멜버른 시티, 중앙에 위치해 있던 W 호텔에서 출발하여, 시티 제일 멀리에 있는 Parliament House (의회건물)까지 트램을 타고 이동했다.


Parliament House in Melbourne / Copyright 2024.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Old Treasury Building / Copyright 2024.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다시 호텔 쪽으로 돌아오는 방향으로 지그재그로 이리저리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서점. 그리고 또 서점! 그리고 또 서점!!!!


한 블록 안에 여러 개의 작은 서점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미소가 절로 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가장 많은 에너지를 주는 곳이 서점이다.

 

평소에도 나는 시드니 시티에 있는 대형서점을 방문하기 위해 하루 일정을 비워놓기도 한다. 그날은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날이다.


그렇게 뜻밖의 서점들을 여러 곳 만났다. 하루종일 이 블록에서만 있으라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중고책을 파는 서점들도 아닌데, 이렇게 여러 서점들이 한 곳에 모여있다니 신기하고 의아했다.


인테리어들이 모두 다르니, 같은 책도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각각의 서점마다 내세우는 책 장르가 다른 듯도 했다. 동화작가를 꿈꾸는 나의 최애 서점은 역시나 동화책이 많이 있던 곳.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특별버전의 <Alice in Wonderland>를 구입했다. 내가 기획하던 북디자인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영어튜터 다니엘도 동화책 출간에 관심이 있었기에, 우리는 첫 날 만나서 동화책 주제에 대해서 얘기했고, 내가 생각해 오던 나의 동화책 스토리 두 개도 그에게 공유했다. 거기부터 시작될 동화책 준비가 언젠가는 이곳에 전시되는 과정으로 끝나면 좋겠다는 꿈을 꾸어보기도 했다.


딱 저 Robbery 위치에!!

딱 1년 후에!!


내 책이 출간된다면, 저 서점으로 찾아가 전시해 달라 해야지.




여러 곳의 서점을 구경하고, 이제 슬슬 점심을 먹으러 갈까 하는 하는 찰나. 더 뜻밖의 곳이 나타났다.

Rare Books' Shop. 실제 서점의 이름은 Kay Craddock Antiquarian Bookseller. 1965년에 시작된 희귀 서적을 판매하는 곳인데, 책 박물관 같았다.


서점 주인, 스태프들도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백발의 할머니 두 분이셨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절로 부러움이 생길 정도였다. 이런 곳에서 평생을 일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책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1993년 출판본이 950불! (한화로 80만 원 정도). 일러스트 작가의 싸인까지 있는 책이었다면 난 아마 이 가격을 주고라도 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꿈같은 꿈을 꾸었다.

나의 책도 오랫동안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책이 되면 좋겠다. 





흐린 날이어서 사진은 꽤 우울해 보이지만, 멜버른 시티의 중심에 있던 해리티지 건물들. 역사가 그대로 보이는 듯 거대하고 웅장했고, 레고 거리를 보는 듯 아기자기했다. 이런 거리를 보면 혼자만의 여행을 항상 꿈꾼다. 사거리 어딘가에 털썩 앉아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멍하니 이곳을 즐기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이곳에서 딸아이의 쇼핑이 시작됐고, 나도 이곳에서 수영복을 구입했다. 혼자만의 여행은 아들이 성인이 되면, 그때나 가능할 듯하다. 앞으로 8년이 남았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일러스트 작품 두 개를 만났다.



Dr, Seuss 스케치원본. 사고 싶었다. 하지만 갤러리 상점이 닫혀있었다. 저 갤러리를 구경하기 위해 다시 멜버른에 방문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마지막 날의 일정이었지만, 빅토리아 도서관도 또 하나의 자극으로 다가왔다.

State Library Victoria / Copyright 2024.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이번 멜버른 여행은 내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떠났던 여행이었지만, 다니엘과 처음으로 동화책 출간을 위한 이야기를 나눈 여행이기도 했다. 그 마음을 알았을까. 나에게 일러스트에 대한 영감을 한가득 주는 서점들이 자꾸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관심이 있으니 서점들만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날의 일정은 계획 없이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흘러갔지만, 어느 순간 '나를 위한 책, 그림, 글'이 콘셉트이었던 여행이 되어 버렸다.


또한 , 물론 나라는 다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로(주, Thoreau)가 살던 200년 전의 거리를 경험하고, 내가 살고 있는 현대문화가 어떻게 전통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도 볼 수 있는 역사 여행이기도 했다.


나는 북디자이너이다. 하지만, 동화책을 출간하기 위해선, 나는 또한 일러스트 작가이기도 하다. 이런 나에게 멜버른의 도시는 나에게 동화 속 같은 도시였다. 시드니로 돌아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벌써부터 멜버른이 그립다.






책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이며, 모든 세대, 모든 민족을 거쳐 물려받은 유산인 것이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좋은 책은 아무리 작은 오두막집의 선반이라도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자태로 당당하게 서 있다. - 소로 (주, Thoreau)





(주)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년 7월 12일 ~ 1862년 5월 6일)는 미국의 철학자·시인·수필가이다. /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믿음사, 2021





다음편 >> https://brunch.co.kr/@maypaperkunah/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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