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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May 03. 2024

멜버른 여행을 떠난 워킹맘

일러스트 디자이너

멜버른 여행 _  Episode 04


Ep. 01 멜버른으로 가는 기차, 11시간  https://brunch.co.kr/@maypaperkunah/168 

Ep. 02 북디자이너가 즐기는 멜버른 서점투어 https://brunch.co.kr/@maypaperkunah/169 

Ep. 03 멜버른에서의 새벽 5시 https://brunch.co.kr/@maypaperkunah/170



멜버린에서의 셋째 날이다.


둘째 날 구입한 수영복을 입고, 7시에 아이들과 모닝수영을 즐기러 수영장 물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난 물에 대한 공포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수영을 배웠지만, 몇 번의 공포스러운 과거의 경험 때문에 그때 이후로 수영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은 참으로 오래 기억되고 생생하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여행이라 정했으니, 안 하던 것을 해보려고 맘먹었다.


아이들끼리 신나게 놀고 있는 사이, 한쪽에서 수영을 시작했다. 바로 꼬꾸라져 수영장 물 한바자기를 먹을 줄 알았는데, 몸이 기억하고 나를 이끌고 가고 있었다. 처음시도는 20m. 그러고는 헉헉 숨이 찼다.


그리고 또 시도.

또 시도.


어느새 한 번에 40m 완주 성공이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숨이 차는데, 왠지 이건 건강한 신호 같았다. 평소에 공황장애가 있는 나는 심하게 숨이 차는 것을 극도로 조심해 왔다. 근데 웬걸. 아무렇지도 않다. 심장박동을 느끼니 나의 에너지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진짜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기분이랄까.


그러고 나니, 물이 편안해졌다. 배영을 하다가 수영을 멈추고 가만히 둥실 떠 있으면, 귀가 물속으로 전부 들어가게 되는데, 그러면 내가 왠지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간처럼 물소리만 들렸다. 물이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 예전의 무섭고 차갑고 어두웠던 물의 기억은 어느새 사라졌다.


수영하길 잘했다.

시도하길 잘했다.

즐겨보길 잘했다.

이것만으로 이번 여행은 성공이었다.



 


30년 넘게 아침밥을 안 먹는 내가, 수영을 하고 나니 입맛이 왜 그리 좋던지. 뷔페 두 접시에, 과일까지 한가득 가져와서 먹고 있으니, 아이들까지 행복해하는 게 느껴진다. 달라진 엄마가 보기 좋은가보다. 함께 아침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아침시간이 좋은가보다.



이날도 아침밥을 먹으며 하루의 계획을 세웠다. 아들이 동물원을 가고 싶단다.


"그래"

"그러자"



동물원으로 가는 길.

높은 건물들이 빼곡한 도시풍경을 보면서,

"야경보고 싶다" 말하니,

딸이

"그럼 동물원 다녀와서 야경 보러 가자"


"그래"

"그러자"


두 번째 계획이 세워졌다.





Melbourne Zoo



트램을 타고 20분 정도 가니 동물원이 바로 나타났다. 도시에 있는 곳이라 작은 규모의 동물원인줄 알았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여긴 또 다른 세상 같았다.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새로운 곳이 나타났다. 결국, 5시간이란 시간을 소요해서 겨우 동물원 한 바퀴를 돌며 구경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어른이 되니, 동물원안에 있는 동물들이 불쌍하게 느껴져서 동물원을 즐기지를 못하는데, 아들은 처음 보는 동물들에 신이 났다. 어렸을 적 동물원 참 많이 데려가줬는데 하나도 기억을 못 하고 있으니, 허무하기도 하고. 하하.


많은 동물들이 숨어 있어서 제대로 구경한 동물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동물원을 공원처럼 즐기는 멜버른 시민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모든 동물을 보겠다고 열심히 걸어다니는 우리는 딱 봐도 관광객이었다.





Yarra River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저녁을 먹고, 야경이 이쁘다는 강가로 향했다.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사진으로 보면 평화로운 강가 같지만, 실제로는 온 동네가 펍으로 변한 듯 비트 있는 음악들과 엄청난 인파들로 인한 복잡 거림이 있는 곳이다. 내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야경을 즐겨본 게 언제인가 싶었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시드니 시내에서 꽤 떨어진 곳이다. 특히나 가로등도 하나뿐이기에, 어둠만 깔리면 암흑으로 변해버려서 별을 바라보는 재미로 살아야 하는 곳이었다. 호주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새삼스럽고 신기했다. 시골쥐가 도시쥐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사는 곳보다 도시가 좋나? 그건 아니지만, 가끔은 이런 곳에서, 저런 시끄러움 속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한다. 항상 '나중에, 나중에, 언젠가' 이렇게 미루기만 하다 보니 어느새 친구들은 사라지고 없다.  


성인이 된 딸과 맥주라도 마시고 올걸 그랬나? 아쉬움 투성이다.








18년 전 첫째 아이를 낳고 항상 집에서만 지내던 내가, 아이들과 밤거리를 활보하는 기분.


꽤나 흥미로웠다. 나도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아침 새벽의 고요함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활기찬 분위기도 알고보니 괜찮은 듯했다.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꽁꽁 나를 숨기고 살다가, 이제 세상밖으로 나오는 기분이랄까. 그동안의 삶엔 내가 없었는데, 이제는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랄까. 누군가의 막내딸도 아니고, 아이들의 엄마도 아니고, 누군가의 집사람도 아니고, 그냥 나 근아로서 독립한 느낌이랄까.


뭐든지 나 혼자 다 할 수 있는 나.

디자이너로서 당당하게 나아가는 나.


여행을 좋아해서 자주 다니곤 했는데, 이번 여행은 왠지 '진짜 나'를 찾은 여행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닝수영을 하며, 아침밥을 먹으며, 야경을 구경하며, 내가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해보면서, '내 안의 내'가 반응해 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나가 바뀌니 또 다른 내 모습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 너도 근아니?

아, 너도 근아였구나.

어서 나와.


울기도 했다.

괜찮아.

그런 너도 사랑해.


시도하길 잘했다.

즐겨보길 잘했다.

이것만으로 이번 여행은 성공이었다.


이번 여행은 내가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여기기로 했다.

2024년 5월 00일.

미리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나도 이런 여행을 즐길 자격이 충분하니까.




모든 것은 '그저 벌어지고 있다'라고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자연의 법칙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작용하고 있다.
찰스 F. 해낼






(주)마음먹은 대로 된다, 찰스 F. 해낼, 뜻이 있는 사람들, 2019





다음편>> Ep.5 멜버른 벽화를 찾아다니는 디자이너

https://brunch.co.kr/@maypaperkunah/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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