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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ul 08. 2024

theme: 빠른 생각

나를 바라보는 theME, 내가 바라보는 theMe

[바라보는 theME] 브런치북의 발행일을 매주 토요일 1회에서, 토요일/월요일 주 2회로 변경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토요일엔 일상의 이야기를 그림일기로 담는다면, 월요일에는 하나의 주제로 이어지는 생각들을 일상의 글로 담아보려 합니다.




아이들의 2주간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호주 시드니의 방학을 말한다.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된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새벽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늦잠을 자면서 아침 식사 시간이 늦어질 테고, 도시락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 나에게는 적어도 한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이 길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기대와 흥분 속에서 앞으로의 2주를 계획해 보았다. 바로 떠오른 것은 '집 앞 산책'이었다.


한동안 집 앞 골목을 10분 동안 천천히 걸으며 다양한 생각에 잠길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의 기분 좋았던 느낌이 다시 나를 부르는 듯했다. 즉흥적인 마음이 변덕을 부리기 전에 실천하기로 했다.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은 후 바로 집을 나섰다. 이날은 좀 더 크게 우리 집 주변을 돌기로 했다.


처음에는 여느 때와 같이 천천히 걸으며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며 글감을 모았다. 하지만 큰길 쪽으로 들어서는 순간, 달리기를 하는 남자와 마주쳤을때, 나는 나의 산책 목적을 변경했다. 느린 산책이 아닌 빠른 걸음의 산책으로 바꾸었다. 나도 저 사람처럼 마라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바로 뛸 수는 없으니, 일단 속도를 내기로 했다.


순식간에 저 멀리 '점'으로 사라지는 그를 보며, 나의 발걸음도 그를 쫓는 듯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내 머릿속 생각에도 속도가 붙었다. 하루 종일 고민해야 답을 얻을 수 있었던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질문 하나가 떠오르면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반자동적으로 답이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다양한 상황을 고려할 여유도 없이, '정답이란 없는 거야'라는 식으로 필터링 없이 생성된 답변들이 스프링에 달려 튀어나오는 듯했다. 나는 질문을 생각하고, 자동으로 나오는 답을 받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천천히 생각했다면, 내 안의 내가 간섭을 하기도 하고, 평소 기억하지도 못하는 먼 미래의 일정들이 걸림돌로 등장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 중간중간, 나의 일상적인 생활이 쓸데없는 생각한다고 호통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빠른 걸음 속에서 이루어진 빠른 생각에는 어떤 간섭도, 걸림돌도, 호통도 따라오지 못했다. '나와 생각' 우리 단둘뿐이었다. 그러니 생각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첫 번째 생각과 두 번째 생각이 착착 달라붙어 세 번째 생각을 데려왔다. 그다음에는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생각이 생각을 만드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실,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경험은 속도라는 추가 조건이 붙으면서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바뀌어 있었다. 빠른 속도 속에서 순식간에 처리되는 생각들은 마치 요즘 AI들이 순식간에 답을 내놓는 것처럼 찰나의 순간이었고, 질문을 위한 물음표를 달기도 전에 답이 알아서 술술 나오는 듯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브런치북을 위한 주제가 정해져 있었고, 제목까지 완성된 상태였다. 꽤 빠른 속도의 생각이었는데, 어느 때보다 논리적이고 체계가 잡힌 생각의 흐름이었다. 이를 그대로 따라가 보려 한다.


빠른 생각은 일요일 오전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 같았다. 그러니 그들과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기분 좋은 대화를 해볼까 한다. 그 이야기를 월요일의 글로 담아보려 한다.









이 글을 작성하고 읽은 책, <월든>에서 비슷한 내용의 글을 발견했다.


반가운 방문객들이 있었다. 딸기를 따러 오는 아이들, 깨끗한 셔츠 차림으로 일요일 아침 산책을 나온 철도원들, 낚시꾼과 사냥꾼들, 시인과 철학자들은 자유를 찾아 자신들의 마을 떠나서 숲으로 들어온 정직한 순례자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교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어서 오세요.'. 반갑게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소로 (주)


나도 소로에게 반가운 방문객이었길 바란다.





(주)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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