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큐브란 04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생각 1.
아트 클래스에 가는 날이었다. 매주 호주의 미술교육안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있는 나는, 이제 나의 30년 이상의 모든 아트 경력을 내려놓고 다시 초등 4학년 시절로 돌아간 듯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충격이 너무도 강렬하여 순식간에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 여운은 오래도록 내 안에서 요동치기 때문이다.
오늘도 교수의 한마디에 나는 ‘역시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생 들어보지 못한 뜻밖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림자에 대해 배울 거예요." 그림자? 이제 사물의 디테일을 표현해야 할 단계인데, 그림자부터 배운다고? 교수의 설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그림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어요."
"첫째는 형태를 알려주는 그림자입니다. 그림자의 시작이 부드러운지, 날카롭게 끊어졌는지에 따라 사물의 표면을 알 수 있어요. 부드러운 얼굴인지, 각진 상자인지를 알려줄 수 있어요."
"둘째는 사물과 충돌하는 그림자입니다. 빛이 사물을 만나면서 그림자가 생기죠. 사물이 다른 사물과 맞닿아 있을 때, 그 그림자의 시작은 항상 날카롭습니다. 표면을 나타내는 날카로운 그림자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해요"
"셋째는 빛과 사물 사이에 등장한 새로운 사물에 의한 그림자입니다. 만약 내가 빛과 사물 사이에 손을 가져다 놓으면 그림자가 생겨요. 손을 사물에 가까이 가져가면 그림자는 진해지고 선명해지며, 손을 사물에서 멀리 떼면 그림자는 커지면서 흐려집니다."
"이런 식으로 그림자를 알아가면 사물이 무엇인지,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자. 그럼 이제 자리로 돌아가서 그림자를 분석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각자 연구해 보세요."
그림자에만 집중하며 연구하고 그것을 그대로 표현했을 뿐인데, 나는 놀라운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어두운 부분을 따라 그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그림자에 담긴 세밀한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림자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중심부까지, 미세한 변화들이 사물의 표면과 형태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 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내 그림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이 있고 정교해졌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그림자를 분석하는 이유가 단지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림자를 통해 사물의 형태와 질감을 이해하게 되니, 내가 왜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에 대한 목적도 자연스럽게 명확해졌다. 그림자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빛과 사물이 만나 만들어내는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의 그림도 그만큼 진실하고 깊이 있는 표현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생각 396.
이 순간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이러한 그림자의 이야기는 내가 나를 들여다보며 성장시킬 때 사용하는 방법과 동일한 이치였으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어떠한 경험을 하거나 특정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나는 종종 나의 부족함에 일부러 집중을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든, 누군가가 내 단점을 지적할 때든, 그 순간에 드러나는 것이 바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그림자들이기 때문이다. 이건 흔하게 오지 않은 기회이다. 그러니 더 집중한다.
이 그림자들은 보통 내 안에 깊이 숨어 있는 어두운 부분들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나의 잘못된 습관, 부정적인 생각, 혹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안에 그림자가 있음을 인지하게 되면, 나는 그 그림자를 탐색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림자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기원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히 살펴보며, 그림자의 형태를 다시금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나는 그 그림자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빛을 비춘다.
이때, 그림자는 더 이상 단순히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변모한다. 마치 사물의 그림자가 그 형태와 성질을 드러내는 것처럼, 내 안의 그림자들도 이제는 나의 일부분으로서, 나를 더욱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발견된 그림자들을 정직하게 마주하며, 그 어두운 부분을 밝은 빛 속으로 이끌어 내는 일종의 나만의 자기 성찰이자 성장의 과정이다.
생각 2385. 인용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팔딱거리는 것은 그 맛과 연결되어 맛의 뒤를 따라 내게로까지 올라오려는 애쓰는 이미지, 시각적인 추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멀리서 너무도 희미하게 몸부림치고 있어,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휘저어놓은 색채들의 포착할 수 없는 소용돌이가 뒤섞인, 어렴풋한 그림자일 뿐이다.
나는 그 그림자를 향해, 마치 유일한 번역가에게라도 말하듯이, 그것과 동시에 태어나 그것과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인 미각이 들려주는 증언을 번역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으며, 그것이 내 지나간 과거의 어떤 특별한 상황이나 어떤 시기와 관련 있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
이 추억, 동일한 순간의 견인력이 아주 멀리서 찾아와 내 깊숙한 곳으로부터 부추기고 움직이고 끌어올리려 하고 있는 이 옛 순간이, 내 선명한 의식의 표면에까지 이를 수 있을까.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
여기서 프루스트는 과거의 기억이 미각을 통해 되살아나려 하지만, 그 기억이 너무 희미하고 멀리 있어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 과정은 내면의 그림자를 탐색하고, 그 그림자를 통해 나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내가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억이나 경험, 즉 그림자가 내 안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표출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재 의식 속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깊이 탐구하는 데 새로운 통찰을 제공받은 느낌이었다. 프루스트의 글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또 다른 창이 되어주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