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 안을 채우다 02
[이전 글들에서 이어집니다.]
<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다 >
이런 제목을 쓰면 너무 거창한가.
하지만 사실이다.
며칠 전, 작은 회전목마에 대한 꿈을 꿨다. [참조글: 꿈을 꿨다. 회전목마] 그 꿈에 이어진 나의 생각은 '작은 원에서 내려 큰 원을 돌아야겠다'였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새벽, 순간의 찰나에 그 생각이 떠올랐다. 어제의 글에서 언급한 1초의 순간이었다. [참조글: 6666 시간으로 나눈 하루]
일요일 새벽 5시,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무엇을 할지 선택해야 할 때,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다.
나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그래, 밖으로 나가자"
산책을 하기로 했다.
바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집 앞 갈림길에서 다시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평소와 다른 반대 방향을 선택했다.
작은 원이 아닌, 큰 원을 그리며 산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찾아왔다. 6년 동안 살았던 이곳에서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마치 완전히 새로운 동네처럼 느껴졌고, 순식간에 나에게 새로운 호기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관찰이 시작된 것이다. 그 관찰의 중심에는 각각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에 피어난 꽃들이 있었다.
단순한 초록색 나무로만 보였던 나무들이 사실은 온갖 색깔의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며 단순한 존재로만 여겼던 나무들이, 마치 그들의 숨겨진 참모습을 드러내듯 화려한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자연이 지닌 깊은 아름다움과 생명력,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눈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평소엔 그저 녹음이 우거진 배경처럼 여겼던 나무들이 이제는 각각의 개성과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로 다가왔다. 나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작은 변화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시각은 자연뿐만 아니라, 내 주변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시선을 넓혀주었다.
그리고, 다시 익숙한 길과 마주했다. 내가 늘 이용하던 길에 들어섰다.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평소와 다른 나를 발견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마음가짐이 달려졌고,
내가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생각하는 범위와 깊이도 달라졌다.
정신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신체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넘는 산책으로 그사이 나의 체력이 강해졌음을 느꼈고,
긴 오르막길도 힘들지 않게 오르며 숨쉬기가 훨씬 편해졌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소리가 반갑게 들렸고,
거칠었던 숨소리가 이제는 편안하게 들렸다.
호흡곤란으로 인한 패닉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이
단 1초의 순간에 의해서 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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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을 향해 가는 길은 한 방향을 향하는 직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큰 원을 그리며 걸어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단지 직진으로 계속 걸었을 뿐인데, 마치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후,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전의 경험과 비교하며 나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큰 원이 단순한 동그라미가 아니라, 조금씩 올라가는 나선형의 성장이라는 것을 오늘의 산책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다. 앞으로 내 인생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것임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새롭게 겪은 경험들이 낯설고 어렵고 혼란스럽고 불안하며 힘겨운 과정들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모든 것이 결국 나의 호기심에 의해 관찰되고 실험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 덕분에, 이제는 조금 더 안정된 마음으로 다가올 새로운 도전을 맞이할 수 있는 여유와 용기가 생긴 듯하다. 앞으로 마주할 또 다른 큰 원을 그리며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마음으로,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한다. 내가 도전하다가 힘겨워 그만두었던 것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작은 원을 그리며 조금 더 성장한 나이기에, 이제 다시 걷기 시작한 두 번째 원에서는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세 번째 원에서 시도하면 되지'라는 여유와 당돌함도 함께 생겨났다.
처음에 언급한 대로, 순간의 선택이 나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나의 마음을 따라 결정하자'는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계획하지 않은, 하지만 굉장히 잘 짜인 세상이 펼쳐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저 길을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주위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을 소중하게 여기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관찰하고 실험하고, 그리고 깊이 사유하고 성찰하면서 말이다.
저쪽 숲 속 월든 호수를 생각하면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오늘 할 일을 즐거이 하게 된다. 때론 그 물을 마시고도 싶다. 월든 호수는 1년 내내 하늘을 비춘다. 그 수면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을 잇는 신묘한 공기 기둥이 솟아 있다. (중략) 모든 호수의 수면 너머로 고요한 음악이 밀려온다.
- 소로의 일기
(주)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 갈라파고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