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뿌리, 나를 다시 그리다

큐브 안을 채우다 04

by 근아


[이전 글들에서 이어집니다.]



집 앞에 뿌리가 땅을 뚫고 나온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그저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풍경 중 하나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나무를 볼 때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의 힘을 견디며 자라온 나무의 역사가 장엄한 기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을 견디며 마침내 표면 위로 뿌리의 모습까지 드러낸 나무는 그 자체로 자연의 위대함을 상징한다. 이 나무는 아무리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생명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40여 년 동안,

정확히는 37년 동안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두 달 전,

나는 뜻밖에도 아트 클래스 기초반에 등록했다.


시작은 그저 소소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호주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 그리고 한국보다 더 다양한 미술 재료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처음부터 다시 배우며 나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우며 나를 더 단단하게 하고자 함이 있었다. 그런데 그 첫 수업이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깊이의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브런치북에 조금씩 담아내고 있다.) 그렇게 새롭게 접하게 된 이론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들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마치 오래된 나무가 다시 한번 새싹을 틔우듯, 이 수업은 나의 삶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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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시작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요즘 나는 아트 클래스를 다녀온 날이면 완전히 지쳐버려, 세 시간 이상의 낮잠을 자야만 한다. 그것도 모자라 그다음 날은 어김없이 늦잠을 자게 된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분명 오후 3시에 일어났는데, 다시 눈을 뜨니 5시 35분. 브런치 발행을 하기 25분 전이었다.


이러한 체력 소모를 겪으면서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그림을 그리며 얼마나 깊이 몰입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사용한 에너지가 얼마나 컸는지를. 4시간 동안의 침묵 속에서 한 사물만을 바라보며 무한의 선을 긋고, 무한의 색을 덧칠하는 시간. 그 과정에서 나는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를 한곳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뿌리가 땅을 뚫고 나온 나무와 같았다.


그림이라는 길은 나에게 있어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나가듯, 나는 꾸준히 그림을 그려오며 나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것이다. 진심으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면서, 내 40년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내 내면 깊숙이 뿌리내린 지식, 경험, 지혜들이 뒤섞여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4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에게 잠재되어 있는 모든 가능성이 나를 뚫고 나오는 듯 했다.


이것은 단순히 그림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삶에 불쑥불쑥 나타나고, 심지어 꿈속에서도 나타나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며 나에게 더 놓은 세계로의 경험으로 이끌고 있다.


이 나무처럼 나도 수많은 시간과 경험을 통해 내 뿌리를 깊이 내렸고, 이제 그 뿌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며 새로운 가지와 잎을 틔우며 성장하고 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나의 그림 역사는, 마치 한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듯, 이제 더 단단하게 내면을 채우고 있음을 깨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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