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독서모임에서 나는 몽테뉴의 글을 읽었다. '군마에 대하여'라는 챕터였는데, 전투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몽테뉴는 무기과 관련하여 이렇게 적었다.
"사회의 가장 큰 위기라고 볼 수 있는 일은 우리의 힘에 달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무기로 우리가 잘 책임질 수 있는 가장 짧은 연장을 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권총에서 튀어나가는 탄알보다는 우리의 손에 쥔 칼이 더 믿음직하다. 권총에는 화약, 부싯돌, 방어쇠 등 여러 부분이 있어서, 그중에 하나만 고장이 나도 그 때문에 운명이 결단난다. 공기가 실어다 주는 것으로는 그 타격이 그렇게 확실치 못하다."
이 구절을 나는 독서모임 멤버들에게 공유했고,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자신만의 진정한 무기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나는 다소 막연하게 내 무기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 순간부터 내면에서는 무언가 답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오늘 새벽, 그 답을 찾았다. 오랜 시간 잠재되어 있던 그 답이 명료하게 떠올랐다.
나의 진정한 무기, 그것은 바로 "관찰하는 힘"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미술을 전공하기로 하면서 나는 선 긋기 연습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의 선을 그을 때마다 그 선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순간적으로 세심히 관찰하고, 그다음에 긋는 선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연습을 거듭했다. 매 순간, 더 나은 선을 향한 노력이 시작된 그때부터, 나의 본격적인 관찰은 이어져왔다. 이 시간은 대학교 때까지도 지속되었고, 나는 이미 13년 넘게 '깊이 있는 관찰'의 경험과 경력을 쌓아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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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학교 시절의 스케치북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 안에는 '구겨진 종이'를 소묘로 그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종이 하나를 4시간 동안 꼼꼼히 관찰하며 연필로 묘사했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때, 나는 오롯이 관찰에 집중해 그 종이의 모든 주름과 질감을 파악하려 애썼고, 그 과정 자체를 참 즐거워하고 있었다. 관찰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종이의 형태와 질감이 내 눈앞에서 점차 생명력을 띠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관찰을 하면 할수록 그림이 단순한 선과 명암을 넘어서, 그 종이를 내 손끝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듯했다.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내가 종이 그 자체를 표현하려 애썼던 것은 결국 종이의 본질 - 그 속에 담긴 모든 섬세한 면모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본질을 조금씩 알아가며 느낀 기쁨을 음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찰을 통해 대상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힘이, 그 당시 나에게 이미 기쁨으로 다가왔음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이 기억은 자연스럽게 대학교 시절로 이어졌다. 그때 나는 나보다 큰 사이즈의 동양 산수화를 모사하는 수업을 들었는데, 한 학기 동안 하나의 그림을 관찰하고 그리던 그 시간은 무려 5개월에 달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 한 작품을 응시하고 분석하며 관찰에 몰두했던 나날들을 기억한다. 매일 같은 그림을 보면서도, 관찰의 깊이는 점차 깊어져 갔고, 내가 놓친 새로운 디테일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있어 관찰이란 단순한 시각적 활동을 넘어서는, 깊은 몰입과 탐구의 과정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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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주간, 나는 또 다른 대상에 몰두하여 매일같이 관찰하고 있다. 그 대상은 핑크색 테두리를 가진 식물이다. 한두 달 전 구입한 이 식물을 처음엔 부엌 창가에 두었지만, 매일같이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서 결국 나의 작업실로 옮겨왔다. 내가 이 식물을 관찰하기 시작한 계기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는 호기심 또한 나의 또 다른 무기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어느 날,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새로운 싹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초록색의 잎을 기대했지만, 그 잎들은 분명한 핑크색이었다. 나뭇잎이 핑크색이라니? 처음엔 의아함에 놀랐고, 그 놀라움은 이내 호기심으로 변하며 이 식물은 나의 새로운 관찰 대상이 되었다. 나는 옆에 있는 다른 식물들과 비교하며, 이 식물이 도대체 어떤 성질을 지녔는지, 또 이 과정에서 나 자신을 또 어떻게 변화시킬지 궁금해졌다.
나는 이 핑크색 식물을 통해 매일 새로움을 발견하며,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관찰의 힘을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이 작은 식물이 가진 특성과 변화는 단지 내가 눈으로 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나의 내면에도 새로운 질문과 호기심을 던지고 있다. 관찰을 통해 발견한 작은 디테일들이 결국 나의 삶에 어떤 의미를 줄지, 그리고 그 끝에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마 이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식물을 관찰하며 나의 삶을 그 위에 투영하는 것이 마치 꿈해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해몽에 따라 길몽이 될 수도, 악몽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관찰을 통해 사물을 다각도로 바라보는 과정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관찰이란 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그 대상이 내 안에서 어떻게 변하고,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는 긴 여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