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디자인의 내지 디자인을 마치고, 이제 표지 디자인으로 넘어가 북디자인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그러나 며칠째 나는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일까 나를 깊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겉으로 보기에 내 작업은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 듯하다. 남들이 보면, “대체 뭐 하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나?”라고 의문을 가질 정도로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미세한 1mm의 차이, 선의 강약과 기울기에 변화를 주며 디자인을 하나하나 발전시키는 중이다. 예전에는 이런 과정을 거치는 나를 스스로 완벽주의자라고 규정짓곤 했지만, 이제는 그것과는 다른 시선으로 나의 작업과정을 바라보기로 했다.
중심에 그린 선(線) 하나가 책 제목의 폰트, 하얀 여백, 책 전체의 균형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계, 그것이 지금 내가 작은 디테일보다 더 중점을 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내가 '큐브의 글'을 쓰면서 점점 나에게 스며들어 정립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디자인에 대한 시각, 사고의 깊이, 그리고 미적 감각을 새롭게 성장시켰다는 느낌을 준다.
이와 함께 나 자신에게 던졌던, 더 근본적인 질문들이 떠올랐다.
이 작품이 과연 나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작품을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작품 속에 나의 정신이 담겨 있을까?
이 작품이 나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을까?
이 작품이 나의 예술을 표현하고 있을까?
이 작품이 나와 독자를 이어 줄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단순히 작업 속도를 느리게 하는 요인이 아니라, 내가 이 작업에 온전히 몰두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남들이 보지 않을 그 작은 디테일에 몇 날 며칠을 열중하며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더 이상 단순히 북디자이너로서의 작업에 머물지 않는다. 책의 표지를 가득 채우는 나의 작품은 그저 시각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나의 정신을 감싸고 있으며, 내지에 담긴 일러스트는 나의 마음과 사랑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내 작업의 포트폴리오에 담기는 한 권의 책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 삶의 한 부분이자, 내 이야기를 담은 상징적인 결과물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책의 선 하나, 여백 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 작은 요소들 각각이 나와 독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아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책을 디자인하는 과정은, 곧 나 자신의 내면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할지 고민하는 과정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완벽을 향한 갈망보다는, 진실되고 순수한 나를 담고자 하는 마음, 그 간절함으로 이 작업을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나의 작품은 나의 정신적, 윤리적, 그리고 미학적 가치를 모두 담은 작품이 될 것이다.
그대의 덕은 감히 친숙한 이름으로 부를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대가 이 덕에 대해 말해야만 하는 경우라면, 더듬거리며 말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말라. 더듬거리며 이렇게 말하라. “그것은 나의 선(善)이며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그것은 온통 내 마음에 들며, 나는 그러한 선만을 원한다. (중략) 한때 그대는 열정을 지녔고, 그것들을 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제 그대는 오직 그대의 덕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 덕은 그대의 열정으로부터 자라났다. 그대는 이러한 열정의 심장에 그대의 최고 목표를 새겼다. 그러자 이 열정은 그대의 덕이 되고 환희가 되었다. - 니체
(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믿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