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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Dec 04. 2024

네모 틀에 갇힌 나, 자유를 꿈꾼다


네모, 네모, 네모 


내 삶은 네모라는 형태 안에서 움직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네모 속의 책은 나에게 세상을 배우는 통로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활자가 내게 속삭였고, 지식, 지혜 그리고 감정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나의 내면을 채웠다. 스케치북은 또 다른 네모였다. 그 위에 흩어진 연필 자국과 물감 자국은 내가 이해하고, 느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한 나만의 언어였다. 그리고 네모 창문은 나와 바깥 세계를 연결해주는 틀이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내가 온전히 가닿을 수 없는 무언가였지만, 동시에 내 시야를 확장해주는 존재기도 했다.


이 네모들은 나의 삶과 연결된 상징이었다. 네모 안에서 나는 배우고, 표현하고,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는 성장했다. 그러나 그 안락함 속에는 항상 질문이 자리했다. 이 네모들은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일까, 아니면 나를 가두는 벽일까?





6개의 네모를 이어 큐브를 만들었다. 


나는 네모를 넘어 큐브라는 형태를 떠올렸다. 평면이었던 네모들이 서로 연결되어 입체가 되었을 때, 그것은 내 삶의 확장뿐만 아니라, 내 삶을 더 깊고 명확히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큐브는 여섯 개의 면으로 구성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공간과 그 바깥의 세계까지 아우르며 더 큰 의미를 품고 있었다. 큐브의 면들은 각기 나의 삶의 다른 측면을 드러냈다.


그중 하나는 과거의 나였다. 그 면에는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서툴게 새겨져 있었다. 어떤 흔적은 분명하고 선명했지만, 다른 흔적들은 흐릿하고 엉켜 있었다. 과거의 시간 속에서 겪은 실패와 성취, 기쁨과 슬픔이 겹겹이 쌓여 그 면의 바탕이 되었다. 또 다른 면은 현재를 비췄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으며, 나의 하루하루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고민과 나의 선택들이 그곳에 머물렀다. 현재의 면은 살아 있는 표면처럼 변화무쌍했고 무한했으며, 나의 숨소리와 맥박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미래의 면은 아직 공백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위에는 희미한 윤곽이 그려져 있었다. 나의 희망과 불안, 그리고 내가 꿈꾸는 모든 가능성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지만, 어렴풋이 비치는 그림자는 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암시하고 있었다. 나머지 면들은 감정의 파편들과 관계의 흔적, 그리고 내가 마주한 세상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이 면들은 서로 교차하며,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다층적인지, 얼마나 복잡한지 보여주었다.


그러나 큐브는 단지 면들의 집합체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비어 있는 듯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그 내부는 사실 나의 내면을 상징했다. 나의 생각이 흘러가고, 감정이 머물고, 나의 정체성이 자리 잡는 공간이었다. 그 안은 어두운 침묵의 방 같기도 했고, 밝은 빛으로 가득 찬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 같기도 했다. 동시에 큐브의 바깥은 내가 속한 세상과의 연결이었다. 외부의 공감은 큐브의 면들을 비추는 빛이었고, 빛이 닿지 못한 곳에서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이 빛과 그림자는 내가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존재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


큐브와 함께한 6주는 나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고,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집중적인 여정이었다. 큐브는 나를 제한하는 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탐구하고 재발견할 수 있는 도구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나의 감정을 살피고, 내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며, 스스로를 관찰했다. 큐브는 나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프레임이자,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하나의 거울이었다.




나 스스로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목표로 시작한 브런치 북 <나의 삶에 나를 담다>



브런치 북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글을 쓰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깊고 복잡한 것이었다. 과거를 회상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일을 넘어, 나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나의 생각과 감정은 자연스럽게 표면 위로 떠올랐다. 때로는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나는 이 혼란 속에서 나만의 질서를 찾아갔다.


<나의 삶에 나를 담다> 라는 글을 쓰며, 나는 내 삶의 기준을 세웠고, 나만의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균형 역시 그 과정에서 중요한 질문이었다. 어디까지가 나를 위한 선택이고, 어디부터가 타인의 기대에 맞춘 행동인가? 나는 글을 쓰며 그 경계를 탐구했고, 그 속에서 나만의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의 목소리를 글로 적는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가 누구인지 선언하는 행위였다. 브런치 북을 통해 나는 나 자신에게 더 큰 자신감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네모난 스크린 속에 존재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스크린은 나에게 글을 쓸 공간과 표현의 자유를 주었지만, 동시에 나를 고립된 틀 안에 가둬버리는 모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스크린의 투명한 경계를 넘어 세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싶었다. 글을 쓰는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나는 이러한 모순된 감정과 싸우며 나의 진짜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브런치 북은 끝을 향한 작업이 아니라, 시작으로 나를 이끄는 길이었다.




이제는 또 다시 점프업의 시간이 온 듯하다.


멈추어 있는 듯 보였던 시간이 어느 순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프업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상승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준비와 도약의 순간이었다. 점프업은 내가 쌓아온 모든 경험과 감정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방향으로 던지는 용기였다. 나는 스스로의 세계를 조금씩 완성해가는 동안, 다시금 멈춰 서서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점프업의 시간은 늘 두려움과 함께 온다. 도약한다는 것은 안정적인 곳을 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멈춰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도약은 나의 삶을 한 단계 더 확장시키는 과정이며, 나는 이 순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모든 틀을 깨부수고 그 위에 나를 세울 차례.


나는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본다. 거기서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그 어른이 되는 과정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보다는, 사회가 제시한 틀에 맞추어진 것이었다. 나는 그 틀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동시에, 스스로를 숨기는 습관을 들였다. 나의 감정은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했고, 나의 생각은 검토된 뒤에야 입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네모는 그런 나를 보호해주는 도구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보호라는 이름 아래 내가 놓친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지금 그 틀을 깨부수려 한다. 이것은 단지 틀을 파괴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보호하고 지탱해준 모든 것 위에 새롭게 나를 세우는 일이다. 나는 내가 지나온 모든 경험과 감정을 토대로 새로운 기초를 마련할 것이다.


높은 파도는 늘 나를 두렵게 했다. 그것은 안정과 질서에서 벗어난 혼란과 불안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파도가 내게 가져다줄 가능성을 본다. 그것은 나를 삼킬 듯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를 더 큰 세상으로 이끄는 문이기도 하다. 나는 거친 물결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새로운 나를 찾아내고 싶다.


파도는 나를 흔들어 놓겠지만, 나는 그것이 내 안에 숨겨진 강인함과 가능성을 드러내리라 믿는다. 물살 속에서 나는 부서질 수도 있고, 방향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경험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임을 안다. 나는 이제 내 안의 두려움을 넘어 더 깊은 바다로 나아간다. 거기서 나는 나를 새롭게 발견할 것이다.


이 브런치북 <나의 삶에 나를 담다>, 발행을 잠시 멈추려 한다. 네모 틀과 큐브의 공간을 뒤로하고, 높은 파도를 마주하는 나를 바라볼 것이다. 아마 수도 없는 실패와 넘어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폭풍우 속에서도 그 거친 물결을 즐기는 진정한 서퍼(surfer)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제는 두려움을 넘어, 더 깊은 바다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싶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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