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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삶의 중심이 될 때,
생기는 변화

by 근아



나는 언제나 내 삶의 중심이 예술 - 미술에 있다고 믿었다.



처음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렸던 열한 살 때부터 지금까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나의 모든 관심은 미술에 머물러 있었다. 오랫동안 갤러리를 찾는 것이 나에게 가장 큰 설레임이었다. 고요한 전시실을 거닐며 화폭에 담긴 색과 형태 속에서 위로를 받고, 깨달음을 얻으며, 때로는 내 안의 복잡한 감정을 해소하곤 했다. 또한, 내면의 이야기를 캔버스 위에 펼쳐 보이며 나를 표현하는 일은 언제나 삶의 본질적인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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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제부턴가 나의 삶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미술, 디자인, 북디자인, 글쓰기, 책 작업까지, 마치 끝없는 퍼즐 조각을 맞추는 듯한 감각이 나를 따라다녔다. 그림을 그리면 디자인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글을 쓰는 도중에는 그에 맞는 삽화를 그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스쳐 갔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하나로 묶이지 않는 듯한 이질감. 나는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지쳤고, 동시에 진정으로 하나의 흐름을 따라가는 집중의 경험이 그리워졌다.


그러던 중, 10주 동안 나의 관심을 독서로 옮겨 보겠다는 작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 삶의 중심축을 미술에서 독서로 옮기는 순간이었다.

오직 독서만 한다!


그 변화는 뜻밖에도 빠르게 찾아왔다.

불과 일주일 만에, 내 안에 잔잔히 퍼지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 시작은 독서 모임을 열면서였다. 하루 두 시간, 오롯이 책에 집중하기로 했다. 북토크도, 토론도 없는 단순한 독서 모임. 그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함께 읽는 사람이 많든 적든, 그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간만큼은 오직 나와 책이 만들어 내는 고요한 연결 속으로 빠져들었다. 말 그대로 'me time' - 'theME time'이었다. 나를 위해, 나를 발견하기 위한 시간.


이른 점심을 마치고 시작하는 독서 시간이기에, 나른한 졸음이 스며드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독서 습관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첫 장르는 소설이었다. 흥미로운 이야기의 흐름이 눈길을 사로잡고, 빠르게 전개되는 서사 속으로 나를 몰입하게 했다. 눈앞에 펼쳐지듯, 나의 상상속에서 펼쳐지는 등장인물의 감정에 동화되고, 그들이 마주한 선택의 순간에 나 자신을 투영하며 시간의 흐름을 잊곤했다.


평소에는 독서를 천천히 하며, 때로는 한 문장에 마음이 머물러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곤 했다. 말그대로 느린 독서를 즐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에 몰입하며 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독서를 시도했다. 그 결과, 하루 2시간 동안 120페이지 정도를 읽어 내려갔고, 일주일 만에 소설 세 권을 완독하는 경험을 했다. 활자를 눈으로 따라가며 이야기 속 세계에 깊이 빠져드는 동안, 독서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몰입 독서를 지속한 지 일주일이 지난 후, 나는 글쓰기를 하면서 첫 번째 변화를 체감했다. 글을 쓸 때 문체가 자연스럽게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면 묘사나 감정 표현이 글로 풀어내기에 더 이상 낯설지 않았고, 이미 알고 있던 기술을 편하게 꺼내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졌던 묘사와 서사 구성이 술술 풀리며 글쓰기가 한결 편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


그 글 한편을 끝내던 순간, 나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줄곧 미술이 나의 삶의 중심이라 믿어왔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표현하고자 하는 본질'을 향한 갈망이 있었다. 형태와 색채로, 단어와 문장으로, 나는 같은 본질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각각의 작업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했지만, 모두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흐름 속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두 번째 변화는 예상치 못했던 영어 실력의 향상이었다. 독서 시간에는 주로 한글로 된 소설을 읽었지만, 남은 시간에는 같은 작품의 영어 원서를 찾아 큰 소리로 읽거나, 깊이 의미를 음미하며 필사하기도 했다. 때로는 영어 원서로 속도감 있게 읽으며, 언어 그대로의 이해를 이어 나갔다. 이렇게 한글과 영어를 오가며 이야기를 탐구하자, 독해력은 물론이고 듣기, 말하기, 쓰기까지 모든 영역이 한층 탄탄해진 느낌이 들었다. 또한, 영어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사라지며, 영어라는 언어가 또 하나의 창으로서 나의 표현 세계를 넓혀 주었다.


그리고 독서가 준 세 번째 변화는 사유의 깊이였다. 독서 전에는 생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집중적으로 책을 읽으며 내 안의 사유가 한 흐름을 따라가게 되었고,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욱더 확장되었다. 책 속 인물들의 선택과 그들의 내적 갈등을 곱씹으며, 나 자신의 삶과 태도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일상의 순간에서도 표면적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의미를 탐구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는 그대로 나의 그림속으로 이어졌다.




조각난 것처럼 보였던 나의 관심이 실은 서로 맞닿아 있음을 이제 나는 안다. 미술과 글쓰기, 디자인과 독서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나를 이루는 한 줄기의 흐름임을. 독서 시간,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theME time'이 나의 예술적 영감을 다지는 가장 중심적 토양이 되어 주었음을. 이 시간을 통해 나의 예술, 언어, 사유가 균형을 찾아가고 있음을 느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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