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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Feb 08. 2024

일은 낮에 하면 안돼?

어, 안돼.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새벽에 눈을 뜨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마구 쏟아지는 이들이 있다. 


잠자던 뇌가 깨어나 활동을 하면, 

한 번의 뇌파의 곡선을 만들 때마다, 

아이디어들이 나타나서는, 

내 머릿속에서 자기가 먼저 튀어나오겠다고 

점프점프를 하는 게 느껴진다.

 

나는 이 아이디어들을 ‘영감(inspiration)'이라는 이름을 가진 요정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요정, 

“서양 전설이나 동화에 많이 나오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불가사의한 마력을 지닌 초자연적인 존재” 


정말 그러하다, 어디서 온 요정인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내 머릿속을 헤집고 정리하고 번뜩번뜩 이것이라고 자극을 준다. 뇌파의 곡선을 놀이터 삼아 놀고 있는 듯하다. 




요즘 창작이라는 게, 창의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창의적인 생각은 모두 엉터리였음을 깨달았다.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고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는 게 아니었다. 


나는 창의적인 사고를 이렇게 정의 내리고 싶다. 


‘이미 존재하는 사물과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완전히 이해하려고 하면, 

그 사물이, 그 상황이 

나에게 그 해답을 보여주는 과정’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충분히 올바르게 이해를 해야 하고, 거기에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이해는 더 깊어져야 한다. 그렇게 탄생하는 그 새로움은 그 이전의 것보다는 가치가 있어진다. 그러하기에 새롭게 태어난 창의적인 아이디어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닌, 진화된 생각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진화되는 사고를 하면서 새로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진화되는 방향은, 내 과거의 이해의 범위, 그리고 미래의 기대, 가능성의 범위와 함께 점점 더 커지고 더 다양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스쳐 지가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새벽마다 나는 그분이 생각난다.


내 나이 스물넷에 만났던 46세의 패션 디자이너 선생님. 지금 내 나이보다 어리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아… 그래서 그렇게 하셨구나.

아… 그래서 그런 분이 되셨구나. 


그분은 가끔씩, 밤새 일을 하시며 한꺼번에 수십 벌의 디자인을 해놓을 실 때가 있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가끔씩, 선생님의 책상 위에 놓여진 30여 벌의 디자인을 보며 디자이너들끼리 이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어디 숨겨놓은 책을 보고 밤새 베끼시는 거 아냐? 왜 밤에만 일을 하셔? 낮에도 하시지.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왜 밤에만 일하셨는지 이제 나는 안다. 낮에는 여러 가지 자극이 참으로 많다. '정신 사납다' 딱 그 말이 맞다. 생각을 집중할 수가 없다. 공부를 위한 집중과는 전혀 다른 초집중의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고요한 밤 시간에, 엄청난 양의 디자인이 쏟아져 나온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디자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가끔은 출근도 안 하시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셨다. 그 침묵의 시간들은 의상, 컬러, 트렌드, 콘셉트, … 이 모든 상황을 큰 그림으로 보며 깊이 생각하는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침묵의 시간을 통해 얻은 답이 그 디자인들이었을 것이었다. 






나도 요즘 이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그분처럼 오래된 경력으로 쌓인 한결같고 안정된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내 주위의 모든 자극을 줄이는 것에 먼저 익숙해지려 한다. 


나만의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입도 닫고, 귀도 닫고, 눈도 감고. 나의 것에 집중한다. 그러면 ‘영감'이라는 요정이 다시 찾아온다. 요정이 또 신나게 놀면, 나는 바빠진다. 침묵의 시간도 자연스럽게 끝나진다.   


그 전날 받은 영감, 꿈에서 받은 메시지, 잠에서 깨어나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스케치에 담는다. 나도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마구마구 스케치북에 쏟아낸다. 실현 가능한 상품인지, 의미 있는 프로젝트인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 넣어야 이루어질지.. 그건 나중일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내 아이디어를 그냥 기록한다. 순식간에 사라질지 몰라서 애타는 마음으로 간절함을 담아 모두 내 눈앞에 보이게 만들어 놓으면,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한 번의 영감은 부풀러 지는 풍선을 콕! 터트리는 바늘과 같다. 풍선 안에 가득 찬 아이디어들이 펑~하고 폭발한다. 풍선을 불 때의 힘겨움, 긴장감들은 영감을 받고 그 모든 것을 스케치북에 담아놓으면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다. 다시 시작인 것이다. 


내가 세상에 벽을 쌓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외롭지만 즐겁고, 

괴롭지만 신나고,

힘겹지만 기대된다.


영감 요정 1과의 이별은 아쉽지만,

영감 요정 2와의 만남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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