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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을 친다는 것은,

by 근아

"새들에게 털갈이 계절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깃털을 잃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지. 사람에게 비유하자면, 실패를 거듭하는 불행하고 힘겨운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털갈이를 해야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니 이 변화의 시기에 애착을 가질 수 있겠지.


...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공부하지 않고 노력을 멈춘다면, 나는 패배하고 말 것이다. 묵묵히 한길을 가면 무언가 얻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의 최종 목표가 뭐냐고 묻고 싶겠지. 초벌 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유화가 되듯,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듬어감에 따라, 그리고 덧없이 지나가는 최초의 생각을 구체화함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


너는 '내가 변했다. 내가 더 이상 예전의 형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나의 내면이나 사물을 보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굳이 변한 것을 찾자면, 당시에 내가 생각하고 믿고, 사랑했던 것을 지금은 더 생각하고 더 믿고 더 사랑하는 것이다.


제발 내가 포기했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나는 꽤 성실한 편이고, 변했다 해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니까.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내가 무엇에 어울릴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지식을 더 쌓고 이런저런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뿐이다."


— 빈센트 반 고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주) ¹




고흐의 편지에서 밑줄을 그으며 멈춘 순간들은, 그저 공감의 표시가 아니라, 나의 삶과 사유가 깃든 응답이었다.


밑줄을 긋는다는 건, 내 마음이 반응했다는 뜻이다

한 문장을 읽고,
나는 잠시 멈춘다.
눈이 머무르고, 마음이 움찔하고, 손이 천천히 펜을 든다.
밑줄을 긋는다는 건 단지 강조가 아니다.
그건 내 안의 무언가가 ‘여기 있어’ 하고 속삭이는 작은 흔적이다.


빈센트 반 고흐.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속 문장들에 나는 연달아 밑줄을 그었다.
그의 말들이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특별함 속에서 내가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털갈이를 해야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무너지고, 방향을 잃고, 애써 붙잡던 것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나는 고흐에게 조용히 대답한다.

“나도 요즘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어.”


나는 생각한다.
내가 무언가를 믿고 있는 한,
그 믿음이 계속 나를 데려갈 것이라고.
그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다시 책장을 넘기고,
또다시 밑줄을 긋는다.
그건 나에게 다시 묻는 일이다.
“정말 이 길이 맞느냐”라고.
그리고 조용히 답하는 일이다.
“응, 아직은 가고 있어.”하고.


고흐는 자신이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더 깊이 믿게 되었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나도 그런 변화를 꿈꾼다.
삶이 나를 흔들 때, 나는 그것을 더 깊은 사랑으로 끌어안고 싶다.
포기하지 않고, 더 단단하게, 더 나답게.


밑줄을 긋는다는 건,
내가 지금 이 문장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아직 다 쓰지 못한 문장이 나에게도 있다고.
작고 조용한 용기의 표시다.





(주)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위즈덤하우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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