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자, 나는 책상을 집 앞 정원이 보이는 자리로 옮겼다.
그 후로 매일같이 정원을 관찰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릴레이 선수다!"
정원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마치 릴레이 선수 같았다.
이웃집의 모든 나무들까지 포함해,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동안
이들은 차례로 바통을 주고받으며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나의 꽃이 활짝 피고 질 때까지
다른 꽃들은 묵묵히 기다려 준다.
그리고 자기 순서가 오면
모든 시선과 햇살을 한 몸에 받으며
온 힘을 다해 아름다움을 펼친다.
호주의 그 릴레이 마지막 주자는
언뜻 보기엔 투박하고 볼품없어 보이던 나무,
그러나 곧 보랏빛 꽃으로 도시를 물들이는 호주의 자카란다이다.
우리 정원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전체는,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생명처럼 찬란하게 완성된다.
나도 릴레이 선수이다.
언젠가부터 나의 매일매일은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나는 하루 종일 나를 성장시켜
내일의 나에게 바통을 건넨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 더 성장할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나로서 살아내고,
그 시간을 내일에게 전해주면,
나는 이미 성장한 내가 되어 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성장의 본질이 아닐까.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움,
노력보다는 흐름에 가까운 성장.
그렇게 나의 삶 또한
조용한 릴레이로 흐르고 있다.
자연의 순환처럼,
심장의 박동처럼.
자연의 릴레이도,
내 삶의 릴레이도,
똑같은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미세하게 자라나며,
보이지 않는 근육을 키운다.
제자리, 출발점으로 돌아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스스로 성장해 있다.
그렇게 좀 더 높고,
조금 더 큰 동그라미를 그려나가며
우리는 성장한다.
나선의 모습으로,
자연의 순환처럼.
어쩌면 우리는
나무늘보 릴레이선수일지 모른다.
조급함 대신 느린 여유로,
멈춤 속에서도 자라나는 법을 아는,
자연. 스러운 인간의 속도로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릴레이 선수이다.
글을 발행하고,
책을 읽다가,
나의 이야기와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그 문장으로 글을 이어나간다.
이 또한 릴레이.
만물이 참여하는 이 쉼 없는 움직임과 행진은 영혼의 불변함과 안정성 원칙에 대비해 이해할 수밖에 없다. 원의 영원한 생성이 계속되는 동안, 그 영원한 생산자는 변하지 않고 머무른다. 그 중심의 생명은 창조보다 우월하고 지식과 사고보다 뛰어나며 모든 원을 포함한다. 그 생명은 자신과 똑같이 뛰어난 생명과 생각을 창조하려고 쉽없이 노력하지만 불가능하다. 만들어진 것은 불완전하다. 다만 이전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잠도, 멈춤도, 보존도 없다. - <순환>, 랄프 왈도 에머슨
정말 그렇다.
자연도, 나도, 끊임없이 순환하며 움직인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멈추지 않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도 있다.
그건 아마도,
내 안의 생명 - 혹은 영혼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움직이되 흔들리지 않고,
변화하되 사라지지 않는 중심의 힘.
그 힘이 있기에,
자연도 나도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오늘의 바통을 내일로 이어주며,
조용히, 그러나 끝없이 성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