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대책없는 단상
가끔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 투두리스트를 적어놓는 버릇이 있다.
아주 작은 것부터 분명 오늘 내에 지키지 못할 것들까지... 그래야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것 같아서다.
흔히 요즘 사람을 파악할 때 MBTI를 많이 대입하는데 이 중 난 지극히 P 타입이다.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말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체계적이진 못한 듯하다.
요 며칠 이 체계적이지 못함에 스스로에게 좀 짜증이 올라오는데 살짝 가라앉힐 겸 글을 써본다.
투두리스트도 아마 비슷한 결로 이해가 된다. 늘 직장이란 사회 속에 갇혀 20여 년간 일하던 관성 때문인가, 요즘처럼 온전히 혼자 일하는 것이 솔직히 좀 버겁게 느껴지는 때이다. 매일 회사 좀 그만두고 편히 나가 놀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일하던 때가 얼마 전인데 정말 그리 되니 되려 혼자인 게 편한 게 편한 게 아닌 것 같기도... 그때의 자아와 지금의 자아가 충돌하는 모양이다.
사실 난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상황은 아니다. 아마 누군가는 내가 제일 속 편하게 산다고 할지도 모른다. 자녀도 없고 남편 구속 따윈 근처도 얼씬할 일 없는 인생이니 누군가 뒷바라지할 일 없이 부럽다 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인지 요즘은 좀 누가 내게 이리 가야지 저리 가보라, 이거 먹자 저건 어떠냐 물어주는 게 문득문득 생각나는 요망한 심리다.
욕심 없다지만 나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을 주르륵 만들어 놓고는 주어담지도 못하고 이걸 어찌 다 해낼꼬 하며 스트레스를 제조하는 신기한 재주란... 스스로에게 고약하고 이상한 성미 같기도 하다.
아마 오늘따라 내 감정이 더 이렇게 요동치는 건, 오전에 엄마와 나눈 짤막한 통화 때문일지도.
어릴 땐 엄마껌딱지처럼 자나 깨나 엄마생각하던 나였으나 살면서 무수히도 치열히 싸우며 생긴 지금의 감정들이 나를 더욱 못되게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들 절대 편할 리 없고, 되려 그날 내 감정만 상하고 다치는 불편한 진실에 갑자기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그 묘한 지점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비는 왜 이리 내리는지... 두시 반 광화문 어딘가에서 약속된 업무 미팅으로 바삐 나가봐야 하니라 오늘의 투정을 이만 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