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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질문합니다! 4부

ENTP, ENFP B

by 과몰입

꽤나 길다고 느껴졌던 12월도 이제 1주 하고 조금 더 남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한 해 잘 마무리하고 계신가요?


특히 이번 주는 종교를 떠나 모두가 들뜬 마음이 되는 성탄절을 앞두고 있는데요,

버거웠던 일이나 심란했던 마음이 조금은 해소되는 주가 되길 바랍니다.


이번 주 MBTI 글쓰기는 서로 질문하기 마지막 편입니다.

세 번째 자리만 서로 다른 ENTP과 ENFP B는 어떤 질문과 답변을 공유했을까요?

두 N의 기상천외한 답변을 즐겨주세요!




ENTP이 ENFP B에게


1. 사람을 손절하는 기준이 있나요?

지금까지 친했던 누군가와 손절한 경험이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해요.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편이신가요? 아니면 대놓고 말씀하시는 편인가요?

반대로 누군가가 나와 거리를 두는 것 같을 때는 그냥 놔두시는지, 아니면 이유를 물어보시는지도 알려주세요!


인간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시절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참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을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때 그 사람을 지금 만났다면 그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배운 게 있다. 모든 관계에는 이유가 있어서 그 시기에 그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걸 깨달은 뒤로는 후회하지 않고, 그저 현재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나는 인간관계를 칼같이 끊는 편은 아니다. 못하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누군가와 아주 친하다가도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도 시절인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큰 다툼이 아니라 물리적인 거리나 상황 때문에 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몇 안 되는 내 자랑 중 하나다. (사실 그 소리 들으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나도 끝까지 참지 못하고 먼저 거리를 둔 사람이 있다. 또 대외적인 관계를 위해 겉으로는 기본적인 소통만 유지하지만, 속으로는 말조차 섞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문제는 그 세 사람 다 ENTP다.

그리고 이 질문은 ENTP님이 해주셨다.


내 머릿속은 한동안 굉장히 복잡했는데, 다수의 의견을 들어보니 역시 솔직한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솔직하게 적기로 했다. 한 명은 13년 넘게 알고 지낸 사람이고, 나머지 두 명은 2~3년 차 지인이다. 연락을 완전히 끊은 건 후자 중 한 사람이고, 나머지 두 명은 솔직히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특정 MBTI에 대한 편견으로 이들을 손절한 게 아니다. 앞서 말했듯 충분히 오랜 시간을 지켜봤고 오래 참고 견뎌왔다. 그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이유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고,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상대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이상,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바라보면 된다. 그런데 이들은 이게 안 된다. 내 기준과 그들의 기준이 다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이다. 그렇게 잘났으면 그냥 너나 잘하지,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가 있지만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말해봤자 그들은 스스로를 세상에서 제일 멋있고 잘난 사람이라 믿으니까.


토론을 좋아하면 논술학원이나 다니지 싶을 정도로 모든 말에 반박을 한다. A 상황에서 A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규율에 어긋나면 안 되는 통제 성향이 짙다고 말하는 사람들과도 약간 결이 다르다. 본인과 비슷한 B 행동을 하면 ‘참신하고 재밌다’고 치켜세우지만, C 행동을 하면 곧바로 ‘왜?’라는 공격이 시작된다. 난 그들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성미야! 하는 특유의 말투가 귀에 이명처럼 맴돈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셋은 만나본 적이 없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톤이 똑같다. 나는 매우 지친다. 이들과 만나고 온 나는 꽤 오래 누워있어야 한다.


예전엔 지쳐도 손절할 순 없어서 꽤나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도 많이 참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서라도 거리를 두어도 된다고 생각하니 한결 편해졌다. 내 성격상 편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모든 관계는 시절인연이다. 억지로 붙잡는다고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놓는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각자의 시절이 다했을 때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뿐이다. 나도 그걸 받아들이며 내 마음을 덜어내고 있다.


(ENTP님이 보내주신 질문에 이런 글을 써서 상당히 걱정됩니다. 하지만 ENTP님을 오래 봐온 INFJ님의 그런 말엔 끄떡하지 않으리라는 말에 힘입어 솔직하게 적어보았습니다. ENTP님 걱정 마세요. 다른 ENTP분들과는 잘 지냅니다. 제 인생에 단 한 명의 베프도 ESTP입니다. 그냥 저 사람들이 굉장히 지독한 걸로…)


2.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좀비가 되어 거리를 떠돌고 있어요.

집에는 몇 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식량이 마련돼 있고, 멀리에는 생존자들이 모여 살며 군인들이 보호해 주는 기지가 있어요.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당장은 안전하겠지만, 한 번 좀비들에게 위치가 들키는 순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밖으로 나간다면 무기도 함께 지급돼서 어느 정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긴 하지만, 여전히 위험하긴 해요.

ENFP님이라면 집을 나가 기지로 향하시겠어요, 아니면 집에 머무르시겠어요?


ENTP님이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의심이 든다. 가족에게 세 가지 질문을 보여줬을 때 “네가 허구한 날 하는 생각이라 답하기 쉽겠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재난영화 중독자다. 우리 가족은 모든 전파가 차단되어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 만나기로 한 장소가 정해져 있다. (비밀이다.) 지진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나는 일본에서 생활했는데, 그곳을 떠난 이유 중 하나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가장 크게 겪었던 지진 당시, 거실에 있던 6인용 테이블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흐느적거렸다. 그 순간 귀국을 마음먹었다. 일본은 ‘언젠가 재난이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안고 살아야 하는 나라라 재난 대비에 대해서는 참 빠삭하다. (맛이 나는 표현이므로 사용하겠습니다.)


재난 상황이라면 나는 일단 관망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다음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여러 동선을 그리며 조금씩 계획을 세워 최종적으로는 생존자들의 기지로 이동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강아지들이다. 내 인생에서 강아지들을 포기하는 건 없다. 전쟁이 나면 집에서 강아지들과 함께 죽겠다고 오래전부터 다짐해 왔다. 하지만 좀비 사태는 다르다. 물려 죽으면 끝이긴 하지만 좀비는 사고할 수 없기 때문에, 지능을 가진 내가 훨씬 유리하다. 게다가 무기까지 있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다.


가장 희망적인 방법은 넉넉히 5일(최대 일주일이어야 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립된 사람의 생존력은 떨어진다.) 안에 내가 살아있다는 신호를 생존 기지에 전달하는 것이다. 통신이 끊겼다는 가정하에 이동 경로를 최대한 남기고, 안되면 좀비가 활동하지 못하는 시간대나 안전한 장소에 흔적과 메모를 남겨 무장한 군인들이 우리를 찾아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도보보다 자전거가 훨씬 효율적이다. 자전거는 연료가 필요 없고 소음이 적으며, 사람의 다리보다 빠르다. 헬멧은 필수고, 사람의 이빨이 뚫을 수 없는 탄탄한 소재의 올인원 슈트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는 스키복이나 등산복을 개량하는 것이 좋겠다.


‘강아지를 데려가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동에 제약이 생기고 짖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강아지들과 함께 기지까지 안전하게 가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그래서 내 답변은 ‘구조를 기다린다’이다. 하지만 그저 기다리지만은 않고, 적극적으로 흔적을 남기고 구조가 빠르게 이루어지도록 행동할 것이다.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끊습니다. 재난상황에 대해서 언제 한번 얘기 나누고 싶어요.


3. 일주일 동안 전혀 다른 MBTI로 살아볼 수 있다면, 어떤 유형을 선택하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ESTJ, ISTJ로 살면 인생이 참 걱정 없을 것 같다. 아 누구나 고민이나 걱정은 있으니 절대 속단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아주 긍정적인 면과 부러운 마음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내가 하는 고민이나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을 보통 STJ들에게는 영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령 기후위기가 닥쳐서 우리가 노인이 되기 전에 공기를 사서 마셔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한다는 이런 걱정에도 보통은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과학자들이 다 해결할 것이다. 라던지 아예 그런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하는 답변이 대다수.

또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너무 하기 싫어서 괴로울 때 고민상담을 하면 할 일은 해야지.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하는 답변… 그들의 성실함과 끈기라는 무기가 제일 부럽다.


나는 성실함이 참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해야 하는 건 하지만, STJ처럼 그냥~ 하면 되는 것을 감정소모를 해가며 하니 내 자신을 갉아먹는 일인 것이다. 그냥 일어나서 출근하고 꾸준히 뭔가 성실하게 하는 것이 참 부럽다. 얼마 전 ISTJ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네 끈기와 성실함이 너를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이라고, 돌아오는 답변은 내가 그런가? 하는 무던함이었다. 내가 갈망하는 것을 본인은 딱히 인식도 안 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그게 멋이다. 성실함과 무던함의 콜라보레이션은 내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면 언젠가는 가질 수 있을까? 부럽다. STJ.




ENFP B가 ENTP에게


1. 생각이나 입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누구나 쉽게 놓지 않는 신념이 하나쯤은 있잖아요.

혹시 본인에게 그런 ‘ 절대 바뀌지 않는 가치 ‘ 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이 질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변하지 않고 믿는 가치는 무엇이지?

답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바로 가족의 소중함이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 아빠 계실 때 잘하자” 라는 생각이다.

(글만 보면 효녀 같지만, 실제론 평범한 자식 1. 혼자 마음속으로만 되뇔 뿐이다.)

문득 아이폰 메모장을 열어, 내 역사가 쌓인 오래된 글들을 스크롤해 내려봤다.


2016년 1월에 적어둔 메모가 눈에 띄었다.

제목 : 엄마 아빠한테 잘 하기

내용 : 자기반성 일기 어쩌고 저쩌고~ … 떠나간 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있을 때 잘하자.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이건 그냥 감정이나 순간의 다짐이 아니라, 정말 내 안에 뿌리내린 신념이구나 싶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성인이 된 이후, 몇 가지 사건들 덕분이다.

첫 번째는,

주변 친구들이 20대 초반에 갑작스레 부모님을 여의고 장례식을 치른 일이 이어졌던 시기였다.

고등학교 친구 몇 명이 모친상, 부친상을 겪었고,

평소엔 그냥 일상을 살던 나도 장례식장을 찾아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두 번째는,

첫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의 어머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였다.

선배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 있었는데, 방 안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이미 쓰러져 계셨다고 했다. 직접 심폐소생술까지 했지만 결국 돌아오시지 못하셨다고.

그 이야기를 회사 사람들 앞에서 담담히 얘기하는 선배를 보며,

나는 ‘난 절대 저렇게 담담히 얘기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세 번째는,

대학생 때 부모님 중 한 분이 암 진단을 받고 큰 수술을 하셨던 경험이다.

지금은 큰 문제없지만, 완치 판정 대신 병원에서 추적 관찰을 이어가고 있다.

그 시간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많은 게 달라졌다.

“내가 지금 누리는 안정감의 중심엔 부모님이 계시는구나”라는 걸 실감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내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이 생각,

“엄마 아빠 계실 때 잘하자”는 말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나를 붙잡아주는 기준이 됐다.

엄마 아빠가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니까,

사실 이건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2. 글을 쓰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적은 문장 속에서도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이 튀어나올 때가 있는 것 같아요.

혹시 그런 순간을 겪으신 적이 있을까요?


기억나는 순간이 한 번 있다.

누군가를 미워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생각하다가 ‘현학적’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그리고 그 단어를 빌려 그 사람을 은근히 깎아내리는 글을 썼다.

겉으론 단어에 대해 쓰는 척했지만, 사실은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순간이었다.

그때 썼던 문장을 다시 꺼내봤다.


현학적 폭력

얕은 배움으로 남을 깔본다는 것은 그릇된 일.

깊이 있는 배움이라 하더라도, 배우되 현학적인 사람보단 배우지 못했으나 배려 있는 사람이 나은 듯하다.


아마 그때 잘난 척하는 그 누군가가 못 견디게 싫었나 보다. (여러 번 겪고 결국 폭발해서 쓴 듯함.)

나를 배려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이, 자신의 잘남만 뽐내는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아 그 단어를 꺼내 썼던 것 같다.


현학적 (衒學的)[현ː학쩍]

• 1 학식이 있음을 자랑하는 것.

• 2 학식이 있음을 자랑하는.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솔직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3. 요즘 머릿속에서 자꾸 떠오르는 문장이나 장면 있으세요?

꼭 책이 아니어도 됩니다. 광고 카피, 꿈속 장면, 친구 말 한마디도 환영입니다.

이유를 알려주시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머릿속에서 자꾸 떠오르는 장면은 있다.

바로 주식 떡상하는 장면이다.

너무 현실적인가? 하지만 개미로써 항상 품고 있는 꿈이다.

얼마 전, 예전에 무지성으로 매수했던 국내 주식을 눈물을 머금고 싹 다 손절한 터라, 지금은 해외 주식에 기대를 걸고 있다.

내가 가진 종목들이 모두 ‘빨간 나라’로 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몇 개만 힘내면 된다.)


현재 빨간 나라에 못 간 종목은 급등주이다.

항상 급등주를 많이 사서 그런지 포트폴리오 관리가 안 되는 느낌이다.

똑같은 실수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하지만 인간은 같은 실술,, 반복.. hagiyo)


최근에 기억에 남은 친구의 한 마디는 드라마『미지의 서울』을 감명 깊게 본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다.

“ENTP아, 너 진짜 미지 같아!”

무한 긍정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뭐가 됐든 뽀느님이 연기한 캐릭터를 닮았다는 말은 기분 좋은 한 마디였다.


얼마 전까진 ‘대나무 행주’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잘 만든 광고 카피 뺨치는 사장님의 영업 전략 덕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밈(?)에서 조금 벗어나서 이렇게 짧게 언급만 해본다.

혹시 다른 분들도 자꾸 떠오르는 장면이나 웃긴 밈이 있다면, 같이 나눠보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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