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라이팅 클럽> 강영숙.
리뷰든 독후감이든 책 페이지와 문장을 나열하는 방식을 쓰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문장을 좀 소개하고픈 책이다.
글쓰기란 얼마나 위험한가, 사람들이 좀 알아야 하니까.
소설 주인공 영인은 어린 시절 친구 엄마의 돈을 훔쳤다가, 돈 내놓으라는 친구의 성화에 화가 나서, 욕설이 가득 담긴 편지를 친구 집 우편함에 넣어 놓는다. (주인공 인성 무엇. ㅋ)
결국 친구와 친구 엄마가 영인의 집을 찾아 '이건 사탄이 쓴 편지라니까' 라며 편지 내용이 공개되는데, 그 상황을 지켜본 한 사람이 영인에게 이런 칭찬을 늘어놓는다.
"야, 너 글 잘 쓰더라. 어떻게 그렇게 편지를 길게 쓸 수 있지? 난 길게 쓰는 거 진짜 힘들던데." (52.p)
ㅋㅋㅋㅋ 이게 영인이 살면서 처음으로 듣는 글쓰기 관련 칭찬이다. 그리고 이 칭찬은 영인의 운명을 계속해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아아, 글쓰기 칭찬이란 게 이렇게나 위험하다. 쌍욕을 그저 길게 썼다는 이유만으로 칭찬을 듣고, 누군가는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계속해서 글쓰기를 하게 된다니.
그러니까 글쟁이들은 누군가 "여어, 자네 글 괜찮은데?" 칭찬을 하면, 노벨문학상까지 상상하게 되는 정신 나간 족속들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마치 친절을 베푸는 여성을 접하고, 그 여성과 결혼까지 상상하는 남성과 비슷하달까. 그러니 누군가의 글이 괜찮다 하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절대로 글 칭찬 그런 거 하면 안 되는 겁니다. 네? 아시겠습니까?
글을 쓰겠다는 열망을 품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환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 일 외에 다른 일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214.p)
소설 속에서도 글쓰기의 위험을 이렇게나 알리고 있다. <라이팅 클럽>에 글 쓰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다 좀 그래. 막 정신병원 가고, 자해하고. 정신 나간.
사실 똑똑한 사람이라면 글쓰기, 책 쓰기 이런 거 안 할 텐데, 글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딘가 좀 모자라고 그런 게 아닌가.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다들 저보다는 똑똑하실 테니까 글 같은 거 쓰실 생각일랑 하지 마시길 바란다. ㅇㅇ. 나는 당분간은 좀 더 써보고 베스트셀러에도 올라가 보고 그러고 싶습니다만. ㅇㅇ.
<라이팅 클럽>은 첫 책 <작가님? 작가님!>을 쓰면서 알게 된 책인데 이제야 읽었다. 낄낄거리고 웃으며 읽기 시작했다가, 중후반 들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책 결말이, (내 생각으로는) 나름의 해피엔딩이 아닐까 싶어서 좋았다. 사실 거의 울 뻔했다.
내 감상 따위 중요한 게 아니니, 이 책을 추천하냐 마냐만 놓고 얘기하라면, 추천. 더불어 내가 쓴 <작가님? 작가님!>도 추천. 네네.
다들 읽고서 글쓰기 같은 거 애진작에 때려치우시길 바람. ㅇㅇ.
내가 이 소설을 처음 알았을 때는 자음과모음 판이었는데, 작년 민음사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작가 이슬아가 추천사와 해설을 달았다. 나는 좋은 소설에 붙는 해설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글의 해석과 감상은 사람마다 다른데, 권위 있는 평론가의 해설은 독자의 감상마저 일방으로 몰아가니까.
이슬아의 해설도 그냥저냥 대충 읽었는데, 처음에는 60년대 중반에 태어난 작가의 책에 너무 젊은 작가가 해설을 단 게 아닐까 우려가 되기도 했다.
그 옛날, 젊은 진중권이 이문열을 비판했을 때, 이문열은 급이 맞지 않아 얘기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거 이거 새파랗게 젊은 작가가 중년 소설가의 작품에 뭐라고 얘기했으려나... 내 심장이 다 두근거렸다.
그런데 책 말미 개정판 '작가의 말'을 보며 너무 좋았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이슬아의 수필을 읽었는데, 그런 이슬아가 이 소설을 읽는 마법이 일었다고. 정말 힘들 때 이슬아의 문장에 기대었다고.
작가 강영숙은 꼰대가 아니구나. 사반세기 늦게 태어난 젊음에도 기댈 줄 아는 사람이구나 싶어 감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