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아무아무 말.

by 이경



1. 지난 토요일에 신림선이 개통했다. 한참 공사할 때, 완공일이 2022년 2월 22일로 쓰여있어서, 2가 많네, 라며 어쩐지 홍진호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샛강역에서 관악산(서울대) 역까지 16분 만에. 사람 북적이는 거 싫어해서 이런 거 첫날에 경험해보는 미친 짓은 피하는 편인데, 어째서인지 신림선은 개통일에 탑승을 해보았다. 40년 살면서 처음으로 서울대 안을 들어가 보았다. 도서관 건물이 정말 멋있었다.


2. 일요일에는 오랜만에 신논현에 가서 강남역까지 둘러보고 왔다. 아내의 "무인양품 가볼까?" 하는 말에 "아니, 무인양품 말고, 무지 가보자." 하는 시답잖은 답을 했다. 다행히 아내는 욕을 하지 않았다.

무슨 강남역에 있는 무인양품은 4층 건물을 통으로 쓰네. 다른 무인양품에서는 팔지도 않는 먹거리들을 팔고 있어서 구경을 하다가 우유에 타 먹는 라씨 가루를 샀다.


사실 강남역 무인양품(muji)에서 파는 가장 특이한 물건은 책이었다. 이야, 가게가 크니까 책도 파는구나. 조지 오웰도 있었고, 다자이 오사무도 있었고, 여행책도 있었고, 디자인 책도 있었다. 무인양품 답게 무지 표지의 책도 있었지만, 무인양품 답지 않게 무엇인가 그려진 것들도 있었다.


3. 독자가 궁금할 때가 있다. 특히나 책을 좋게 읽어주시는 분들을 보면 아, 이 분은 어떤 사람일까, 내 책을 읽어준다니, 하면서 나는 무신론자인 주제에 천사의 모습을 떠올릴 때가 있다.


반대로 작가 놈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지 궁금해하는 독자도 간혹 있다. 일 년에 한 두 명 정도로, 정말 간혹 있는데, 위험한 분들이다. 내 얼굴을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궁금해할 때면 나는 UMC의 <사랑은 재방송>의 한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살면서 첫 번째 벙개

소풍 때에도, 극기훈련 때에도

단 한 번도 신경 쓴 적 없던 옷매무새

고치느라 그녀를 만나기 전 반나절 내내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울해 나 생겨 먹은 거 좆같애

첫인사는 뭐라고 할지 밤새 걱정돼

UMC - <사랑은 재방송> 中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울하다.



4. 밀러의 서재를 사용하지 않는 탓에, 출판사에서는 <작가의 목소리> 모니터링을 하고서 한 줄 평 같은 게 올라오면 공유를 해준다. 최근에 올라온 한 줄 평으로는.


'진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재밌는데 가끔 뼈 때려서 더 매력적인 글.'


크흑. 안녕하세요, 저는 이 매력입니다.


5. 누군가는 <작가의 목소리>를 읽고서,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 다 쓴 느낌이라고도 해주셨다. 위의 한줄평에 쓰인 뼈 때린다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겠지. 사실 나는 글 쓸 때 눈치 되게 많이 보는 편인데.


안녕하세요, 저는 이 눈치입니다.


6. 페이스북에서 가끔 보이는 뭐, 자청? 전자책을 이십 몇만 원에 팔고 어쩌고 저쩌고, 월 일억을 벌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람, 책 제목이 뭐라더라, 역주행? 역발행? 하고서 진짜 생각 안 나서 찾아봤더니 <역행자>였다. 미안합니다 자청 씨. 암튼 아, 이런 책이 나왔군 하고서 예스24 접속해봤는데 종합 베셀 차트 1위를 찍었네?


무엇이든 읽어보지 않고서는 까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다. 흔히 말하는 중립기어의 생활화를 하고자 하는 편이라 <역행자>를 읽어보지 않고서는 뭐라 말할 수 없다. 아마도 평생 읽어보지 않을 테니, 평생 관련하여 말할 기회가 없겠지. 하지만 이런 차트 1위는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전자책을 이십 몇만 원에 팔았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그걸 사서 본 사람도 이해가 안 가고.


7. <작가의 목소리>에서 눈치 안 보는 척, 잘난 척 오지고 지리게 해 두었지만, 여전히 글 쓰는 일은 어렵고, 세상에 책이 이렇게나 많이 나오는데 내가 하나를 더 할 필요가 있을까, 뭐 그런 찌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럴 때면 출판 경력 20년 정도의 베테랑 편집자와의 미팅을 떠올린다.


편집자 경력이 20년이면 정말 어마어마한 인기 작가들과도 작업을 해보았을 테고, 정말 어마어마하게 글을 잘 쓰는 분과도 작업을 해보았을 텐데, 어째서 나 같은 인간에게 글을 써보라고, 같이 책을 내보자고 이야기를 하셨을까아아아아아, 아 나 글 좀 쓰는 거 아닌가, 어? 그러면서 자신감을 채우는 것이다.


물론 독자가 그런 편집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고, 나는 그런 독자를 만나면 천사를 상상하는데, 그런 천사 분이 간혹 내 생김새를 궁금해하고 그러면, 저는 우울해지는 겁니다... 와, 빌드업 보소.


8. 사실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은 좀 못생겨도 용서가 된다는 거다. 노래하고, 춤추고, 아이돌 같은 거 하려면 아무래도 외적으로 좀 남다른 매력이 있어야 할 텐데, 독자들은 대체로 글 쓰는 인간에게 그런 기대가 적다.


하지만 기왕이면 잘생기고 예쁘면 좋겠지. 그러니 저는 우울해지는 겁니...


9. 사실 나 되게 잘생김. 울 엄마가 나보고 잘생겼다고 했는데? sns 등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유로는 괜히 얼굴 보였다가 글이 과소평가받을까 봐서임. 얼굴이 아닌 온전히 글로서 평가받고 난 후에는 여기저기 얼굴을 드러내며 막 돌아다녀야지. 얼굴이 너무 잘생기면 다른 일에서 과소평가를 받게 되는 겁니다. 커트 코베인 보세요. 네?


10. 아,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에잇, 말줄임표 공격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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