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름다웠지만

by 이경


군대 대신 방위산업체로 들어간 구로공단 공돌이의 삶은 빡셌다. 주말도 없이 하루 수 만대의 핸드폰을 만들어 수출의 다리 너머로 보내면서 내 청춘도 같이 다리 너머로 보내는 느낌이었달까.


3년만 다녀도 되었을 공장이었는데, 스물 하나부터 스물 다섯까지 5년이나 그곳에서 청춘을 소모했다. 동갑내기의 친구들이 가난한 대학 생활을 할 때 비교적 부유한 월급의 노예를 택한 셈이다.


바쁜 공돌이가 되면서 첫사랑에 실패했다고 여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후의 모든 연애는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같은 공장에서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생활 반경이 집 - 공장 - 집 - 공장이 되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사랑을 찾게 되었다.


어릴 때, 그러니까 사랑이 무언지도 몰랐던 꼬꼬마 시절에는 젊은이들의 사랑만 아름답다고 여겼다. 십 대, 이십 대 청춘의 사랑. 어떠한 조건 없이 그저 사랑만을 또 사람만을 보고 움직일 수 있는 시절.


삼십 대 이후의 사랑은 분명 위험할 거야, 불륜, 치정, 더럽거나, 아무튼 아름답지 않을 거야. 청춘이 영원할 리도 없는데 어릴 때는 그렇게 치기에 젖어 있었다.


그러니 공장에 다니던 이십 대 시절에는 누구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이 많은, 이미 가족이 있는 아주머니들만 아니라면야, 만나지 못할 사람은 없겠지, 싶었다.


5년 간의 지겹던 공장 생활을 그만두기로 작정을 한 어느 날에 S가 회사에 들어왔다. 나와는 동갑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단기 알바로 몇 달 간만 공장에 다닐 예정이라고 했다.


단순 노동이 반복되는 공장을 다니면서 사람들 얼굴의 디폴트 값이 '무표정'이라는 걸 알았다. 노동자들은 대개 손만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표정 없이 일했고, 일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울상이었다.


그런 공장에서 S의 표정은 달랐다. 까만 얼굴의 그는 뭐 그리 좋은 일이 있는지 늘 웃고 있었다. 어두운 공장 안에서 그의 얼굴에서만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회사를 그만두든, 단기 알바생인 S가 먼저 그만두든, 누군가 이곳을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 저 환한 미소를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결국 S와 친하게 지내던 동생에게 이야기해 같이 점심을 먹기도 했다. 공장 근처 부대찌개 집에서 자연스레 라면 사리를 주문해 먹던 S는 먹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그 식사 자리 후 S를 향해 대책 없이 커질 준비가 되어있던 나의 마음은 S의 사연을 알게 된 후 거품이 터지듯 단숨에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S는 몇 개월 후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였으며, 이미 그의 뱃속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동갑인 예비 남편과 결혼을 준비하며 조금이라도 신혼 자금을 만들려고 공장을 택했다는 사연이었다.


S는 아름다웠고 나는 젊은 청춘이었지만, 결코 사랑할 수 없는, 또 사랑해선 아니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2005년 공장 퇴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제임스 블런트의 <You're Beautiful>은 2005년 발매된 곡으로 지하철에서 만난 천사처럼 아름다운 누군가를 노래하는 곡이다. 문제는 그 아름다운 사람 옆에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것이지만.


앞서 2004년 일본에서 히트한 <전차남>의 영향이 있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국내에서도 광고 음악에 쓰이는 등 크게 히트했다.


가사 그대로 지하철에서 스쳐 지나가는 짧은 인연을 생각하며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랑해서 곤란한 누군가에게 마음이 갈 때, 그러니까 청춘의 힘만 믿고서 S의 미소에 잠시나마 빠져있던 나에게 왠지 모를 위안이 되어주었던 곡이다.


그 일로부터 5년이 지나 서른이 되어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고는 신혼여행으로 프랑스 파리를 찾았다. 몽마르트 언덕에 오르던 길, 한 거리의 예술가는 음악을 하나 틀어놓고는 마리오네트를 놀리고 있었다.


거리의 예술가 앞에 놓인 모자에 동전 몇 개를 넣었지만 그 금액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마리오네트가 움직일 때 흐르던 음악이 제임스 블런트의 <You're Beautiful>이었던 것만은 잊을 수 없다.


다행히 옆에 있던 사람은 사랑하기에 곤란함이 없던 사람이었다. 공장에서 만난 사람도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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