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를 보다가

by 이경



일 때문에 오랜만에 논현에 나왔다. 서브웨이 신논현역에서 내려 논현역까지 걸었다. 고작 음절 하나 차이 이름의 역과 역 사이, 까짓 거 걷지, 운동삼아, 그거 얼마나 된다고, 생각했으나 오늘의 하늘이 땡볕이었다는 것을 간과하였다. 오늘이 중복이라는 걸 잊었다.


그러한 더위 차치하고 길을 걷다 보니 지하 통풍구이려나, 그 앞을 자리 잡고 있던 유리가 깨졌다. 밤새 취객이 강철 주먹이라도 뻗었는가. 그야말로 산산조각. 가로 세 줄의 안전제일 위험 데인저 테이프가 초라해 보일 정도로 곧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 같은 유리 알알들.


깨진 유리를 바라보며 걸었다. 무용한 것.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쓸모가 없으면 어떠한가. 반짝반짝 깨진 유리가 어쩐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준희가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사랑은 유리 같은 것입니다. 아름답지만 깨지기가 쉽지요. 그런데 어떤 유리는 깨어져도, 그것이 쓸모가 없다 하여도 아름답다 이겁니다.


깨진 유리를 지나쳐 걷다가, 저거 예쁜데, 곧 사라져 버릴 깨진 유리. 무용한 것. 사진이라도 남겨두면 어떨까 싶어 한참을 걸어오던 길을 뒤돌아가 사진을 찍었다.


날도 더운데, 중복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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