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은 것도, 유별나게 깔끔을 떠는 것도 아닌데 책은 꼭 새 걸로 사게 된다. 요즘은 중고서점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새것과 다름없는 깨끗한 책이 시중에 많이 나오지만, 희한하게 타인의 손을 탄 책을 읽으면 몸 어딘가 자꾸만 가려운 느낌이다.
꼭 읽어보고 싶은데 절판이 되어 구하기 어려운 책이 있으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중고를 알아보는데, 그래 봐야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중 하나가 둥지 출판사에서 다섯 권짜리로 나온 서영은의 중단편전집 세트 중 <시인과 촌장>을 표제작으로 삼은 세 번째 책이다.
하덕규와 오종수로 시작된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의 팀명이 서영은의 단편 <시인과 촌장>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새 책은 좀처럼 구하기 어려워서 개인 거래로 구해 읽었던 것이다.
(참고로 하덕규 오종수의 팀명은 '市人과 村長'이며 서영은의 소설 제목은 <詩人과 村長>이다.)
그렇게 오래전 중고로 구해서 읽은 <시인과 촌장>은 이야기가 시작된 이후 줄곧 우울함을 끌고서 나아가는 소설이었다. 독자의 뒤통수를 때려주는 듯한 그 마지막 문장이 퍽이나 여운이 남아 한때는 연례행사처럼 우울함이 필요할 때면 꺼내 읽기도 했다.
소설만큼 우울했던 것은 책 말미에 실린 서영은의 작품 연보였다. 연보에는 중학생 시절 국어 교사에게 특별한 총애를 받다가 그 사랑이 다른 학생에게 옮겨가자 크레졸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온 나는 서영은의 작품이 아닌 이런 연보를 읽으면서 글쓰기를 접어두기도 했다. 타고난 작가라면 무릇 이런 예민함과 감수성이 있어야겠거니 싶었으니까.
서영은만큼은 아닐지라도 성격이 좀 유별나긴 한 건지 주변으로부터 너는 왜 이렇게 예민하냐는 타박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다. 마흔 가까이 되어 첫 책을 내고서는 이런 모난 성격이 어쩌면 글을 쓰기 위한 당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씌우기도 했다.
정말 문제는 이런 예민함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내는 가족들에게만 휘두른다는 점이다. 엄마에겐 자식의 짜증을 받아주는 것이 마치 당연한 존재인 듯 굴었으며, 결혼 후에 그 짜증의 대상은 엄마에게서 아내에게로 옮겨갔다. 아이들이 나고 자라면서 내 예민함의 크기는 자연스레 점차 넓고 크게 번져갔다.
타인에겐 좀처럼 굴지 않는 예민함을 가족에게만 보이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예민함의 가장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불안해한다는 점인데, 그 상상의 끝에는 늘 죽음이 있다. 그래서 운전을 할 때면 불필요할 정도로 예민해지곤 한다. 일상에서 운전할 때만큼 죽음을 떠올리기 쉬운 것도 없으니까.
깜빡이를 켜지 않고 들어오는 차를 보거나, 운전할 때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일이 생기면 쉽게도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게 되는 식이다. 사람의 본성을 확인하기 위해선 술을 먹여보든가, 식당 종업원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든가, 운전할 때를 보라 하였던가. 이렇다 할 주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식당 종업원에게도 친절하게 굴지만, 운전을 할 때만큼은 늘 신경이 곤두서고 예민해진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괴로워하는 것 따위 혼자서 감내하면 좋을 텐데, 예민함이 터져 주변에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면 나 스스로에게 패배하는 기분에 휩싸여 후회가 밀려온다. 때로는 예민함이라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못할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급격한 감정 기복으로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예민하다는 지적을 받을 때마다 고쳐보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마치 내 안에 너무 많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많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시인과 촌장 3집에 실린 <가시나무>는 훗날 목사가 된 하덕규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CCM곡이 되었지만, 나는 꼭 크리스천 뮤직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예민한 구석이 있는, 그래서 외롭고도 괴로운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곡처럼 들리기도 한다. 괜찮아,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나 또한 그래, 하고서 어깨를 다독여주고서는 같이 울어주는 것처럼.
그래서인지, 우리말로 쓰인 곡 중에 가장 슬픈 노랫말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가시나무>를 꼽곤 한다. 듣고 있으면 가장 가까이에 머무르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못난 내가 떠올라서. 그게 또 많이도 괴로워서.
<가시나무>는 조성모가 불러 대중적으로 히트하기도 했고, 이현우는 <까시나무>로 제목을 바꿔 부르기도 했다. 하덕규와는 전혀 다른 음색의 임지훈이 부른 버전도 괜찮고, 세월이 흐르고는 경연 프로그램 등에서 불린 다양한 버전이 있지만, 역시나 시인과 촌장 3집에서 하덕규가 부른 섬세하고도 유약한 오리지널 버전과 그 후에 발표된 라이브 버전이 가장 좋다.
<가시나무>를 들을 때면 '시인과 촌장'이라는 팀명 때문인지 자연스레 소설가 서영은과 소설 <시인과 촌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살면서 많은 위로를 건네주는 <가시나무>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에는 어쩌면 서영은의 소설이 한몫을 한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하덕규든 서영은이든 혹은 이경이든 사람들은 누구라도 각자의 마음속에 가시나무 한 그루쯤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내 안에 있는 가시나무에도 언젠가는 이파리들이 자라나 울창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 둘째가 갓난아이였을 때 쉬이 잠들지 못하던 날, 가끔은 아이를 안고서 재울 때가 있었다. <가시나무>는 그때 아이에게 들려주었던 몇 곡의 자장가중 하나였다. <가시나무>를 들려주면 아이는 곧잘 쌔근쌔근 잠이 들기도 했으니, 나에겐 여러모로 감사한 곡이 아닐 수 없다. 가정내 평화와 위로를 안겨주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