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형이 "애들 데리고 할로윈 캠핑 갈래?" 해서 지난 주말 강원도 홍천에 있는 한 캠핑장을 다녀왔다. 엄마빠 가족과 형네 가족, 우리 가족 총 세 집이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어른들 중 막내인 나는 돈 한 푼 안 쓰고 엄마빠와 브라더에게 빌붙은 것이다. 아이해브노 염치, 몰라몰라.
캠핑장은 꽤나 넓어서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하우스 형태의 공간도 있었고, 카라반이라 일컫는 캠핑카도 있었다. 브라더네 가족은 텐트를 쳤고, 엄마빠와 우리네 가족은 캠핑카에서 자게 되었다. 캠핑카 내부에는 성인용 침대가 있었지만 아해들이 그곳에서 자는 바람에 나는 아이들용 간이 침실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키가 188cm에 달하는 (물론 구라...) 나는 다리를 쭉 펴고 잘 순 없었지만, 나름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하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무엇보다 빌붙어서 온 여행이 아닌가.
잠자리의 불편함 외에 캠핑카는 두 가지 괴로움을 나에게 선사했는데, 하나는 과연 변기의 물이 잘 내려갈 것인가 하는 의구심과 샤워기의 물이 쫄쫄쫄쫄 나온다는 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화장실에서 물이 내려가지 않아 치욕을 맛 본 이후로 그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30년 가까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 캠핑카 변기는 쉽게 막힐 수 있으니 절대 휴지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안내문이 나를 압박해왔다.
또한 샤워기의 물이 쫄쫄쫄쫄 흐르는 것과 한 번에 20리터 이상의 물을 쓴 이후로는 온수가 갑자기 냉수로 변할 수 있을 거라는 안내문 역시 공포로 다가왔다. 20리터의 물이 나오기까지는 과연 몇 분이나 걸릴까. 남자들은 샤워하다가 멍 때리는 게 그 성별의 특징 아닌가. 머리에 샴푸를 올려놓고서 냉수 샤워를 할 것을 상상하니 두려웠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안내문과 달리 처음부터 온수의 조절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거 발란스 게임인가요? 물은 너무 뜨겁거나 차가웠다. 이대로는 화상을 입거나 얼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시간 상관없이 온수가 콸콸콸콸 나오는 공중 샤워실과 역시나 물이 쭉쭉 내려가는 공중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샤워를 하고, 새벽 세시에 배가 아파 화장실을 갔지만 다행히 귀신이 따라 들어오진 않았다. (사실 무서웠다규...)
그러고 보면 집에서는 온수도 잘 나오고, 화장실 물도 잘 내려가고(며칠 전 화장실 공사함...) 다리도 쭉 펴고 잘 수 있는데 이런 캠핑카에서 잠을 잔다고 생각하니 이것이야말로 사서 고생의 전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평불만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빌붙어서 온 여행이 아니던가. 내 아무리 염치없는 인간이라도 그 정도의 염치는 있는 것이다.
어쨌든 할로윈 캠핑의 일정은 금토일, 2박 3일이었다. 퇴근 후 이동한 탓에 금요일에는 캠핑장의 분위기만 보고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고, 일요일에는 짐 싸서 집에 가아죠. 축제의 메인은 토요일이었다. 오오, 할로윈 행사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근데 우리가 언제부터 할로윈을 지낸 거지.
몇 년 전부터였을까, 이태원 등지에서 젊은이들이 할로윈 코스튬을 하는 걸 보고서... 아니, 이 젊은 놈의 새끼들... 단오 같은 대한민국 전통의 명절도 챙기지 아니하면서, 쥐불놀이 한 번 즐기지 아니하면서 양놈들의 축제를 이리 가져와서는 밤새 얼굴에 화장하고 술 마시고 처음 보는 남녀끼리, 혹은 남남끼리, 혹은... 암튼 간에 붙어 놀려는 수작들이구나, 으으으 이 젊은 놈의 생키들... 하면서 부러워했는뎅. 헤헷. 아주 이러다가 나중에는 세인트 페트릭 데이까지 챙기겠어 이 생키들... 헤헤헷.
근데 막상 할로윈 캠핑에 와보니 이게 또 신세계였다. 토요일 저녁 7시 강원도 산속에 어둠이 깔리고, 늑대 소리가 울려 퍼지고(구라), 도깨비불이 여기저기에서 생겨나고(구라),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뿌연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서(사실은 모닥불) 아해들이 "해피 할로윈! 사탕 주세여!" 하면서 돌아다니니 근 1년을 먹어도 남을 듯한 사탕과 젤리가 생긴 것이다.
이태원에서 술 먹고 하룻밤 어떻게 잘 놀아볼까 하는 젊은이들만 생각하다가, 처음 보는 아이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사탕을 준비하고, 옷과 화장을 준비하고, 불편한 잠자리를 감수하면서 할로윈 캠핑을 보내는 다른 가족들을 보니... 그래도 이건 정말 사서 고생이 아닌가... 헤헤헷... 지금은 귀여운 코스프레를 하며 사탕을 받으러 다니는 어린아이들도 몇 년이 흐르면 이태원에서 술 먹고 놀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모르겠습니다, 네네.
암튼 할로윈을 맞아 나는 김정은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인민복을 입고서 (구라임... 인민복 같이 생겼지만 나름 오리털이 들어간 따뜻하고 소중한 저의 가을 옷이다 이겁니다... 네네...) 형수님이 준비해온 마귀할멈 가면을 써보았다. 마귀할멈 가면이 찰떡같이 어울린다고 하여 와이프가 찍어주었다. 왼쪽은 조카 1호이고요, 네네. 근데 뭐 실제 마귀할멈 얼굴이나 실제 제 얼굴이나 별반 차이 없으니까능 제 얼굴이 궁금하신 분은 그냥 마귀할멈을 떠올려주어도 좋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아몰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