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한국어와 문장부호

by 이경




문지혁 작가의 <중급 한국어>를 읽고 있다. 아직 완독 전인데, 읽다가 재미난 부분이 있어서.


바로 소설 속 문지혁이 문장부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물결표시(~)를 언급하는 부분인데, 학생들에겐 키보드에서 물결 표시를 아예 빼버리라면서, 정작 책에선 두 페이지에 걸쳐 물결 표시가 가득하다.


이 무수한 물결들은 소설 속 지혁의 딸이 타이핑한 것으로, 책을 읽으면서 폭소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이 부분 보면서 떠오른 것 중에 하나는, 이거 혹시 박범신 작가 디스 하는 거 아닌가? 했던 거였다. 그 어떠한 진지한 글에도 물결 표시가 들어가면 가벼워진다는 점에서 몇 해 전 트위터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던 박범신 작가가 떠오른 것. 책에 쓰인 예문마저도 '미안해요~'이고. (아님말궁)


그리고 또 하나는 문지혁 작가가 이 부분을 통해, 앞으로 글을 쓰며 책에서 쓸 물결표시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물결을 써낸 게 아닐까, 어쩌면 이건 그간 물결표시를 넣고 싶을 때에도 쓸 수 없었던 압박감에서 벗어나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그린 것은 아니었을까아...(아님말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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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책에 문장부호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내가 사용하기 꺼려하는 문장부호는 느낌표(!)라는 글이었다.


책에 쓰이는 글에는 느낌표가 없이 쓰고 싶다. 최근 몇 년 안에 읽었던 책 중 느낌표가 없는 책은 글항아리 출판사 이은혜 편집장의 <읽는 직업>이었다. 책의 내용은 차치하고, 느낌표가 사용되지 않은 그 형식에서 감탄하며 읽었다. 이은혜 편집장은 느낌표를 사용하고픈 그 욕망을 어떻게 억눌렀을까.


느낌표가 없는 글은 독자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지 않으면서 묵묵하고도 꾸준히 끌고 가는 힘이 있다.


늘 느낌표가 없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다섯 번째 책이 되어서야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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