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차 대구 내려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기 전에는 미리 자리를 지정해서 혼자 앉아갈 수 있도록 하는 편이다. 역방향 가장 끝자리 창가 쪽이 좋다. 끝자리 창가 쪽엔 높은 확률로 전기 콘센트가 있어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고, 사람들은 역방향에 잘 앉지 않으려 해서 혼자 앉아 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왕복 네 시간 기차를 탈 동안 읽으려고 서점에서 필립 로스의 <울분>도 들고 왔다. 자리에 앉아 <울분>을 몇 페이지 읽는데 트레이닝복의 청년이 운동가방을 내려놓고 내 옆에 앉았다. 젠장. 젠장.
그리고는 통화. 통화. 청년은 20분이 넘게 내 옆에 앉아 통화를 했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그 입 좀 닥쳐주실래요? 하고 싶은 심정.
통화를 들어보니 청년은 아무래도 운동으로 대학이든 어디든 들어가려고 했던 거 같다. 부상으로 면접조차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화하는 상대방에게 털어놓는다. 대구에 내려가면 정형외과에 가볼 것이며, 이제 운동이 아닌 공부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그저 불운이며, 앞으로의 일에 대한 액땜이라고 했다. 청와대에서 경호를 보는 사람들도 체력검사에서 만점을 받고, 100미터 달리기가 느려 떨어진다는 얘기도 했다. 자신은 부상 때문에 달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허리가 아프다. 걸어 다닐 때는 괜찮지만 앉거나, 앉았다 일어날 때 고통이 극심하다. 허리가 아파 기차에서 편하게 다리를 뻗고 싶었는데, 옆에서 아프다는 소리를 20분 동안 하고 있으니 나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청년은 처음에는 발이 아프다가 발목과 종아리로 통증이 올라왔다고 했다. 청년의 다리를 보니 기다란 테이핑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허리가 아픈 사람과 다리가 아픈 사람이 같이 앉아 대구에 내려간다. 청년은 긴 통화를 마치고는 한숨을 내뱉는다. 통화 끝에는 한숨이라니. 참 성가신 사람이군.
"축구 선수예요? 보디가드 시험이라도 보는 거예요?"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다.
긴 한숨을 내뱉던 청년은 내 옆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마음이 넓지 못한 나는 청년의 갑작스러운 울음에 괜찮다는 위로도, 잘 될 거라는 희망의 말도 전할 수 없다.
꿈을 잃어버린 청년 옆에서 나는 그저 이런 글만 쓰고 있을 뿐이다.
손에는 필립 로스의 <울분>이 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