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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육수에 정숙함을 말아낸 국밥 한 그릇,

한 그릇에 담긴 정갈함, 성북동 구포국수에서 찾은 따뜻한 위로.

by 까칠한 한량



저녁 7시, 성북동 골목 어귀에서 기다린 20분

성북동의 저녁은 서늘했다. 간판이라기보단 간판 같은 목재 글씨 하나, ‘구포국수’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뒷모습 너머로 살짝 보였다. 특별히 화려하지 않은 외관인데, 입구 앞은 이미 줄이 길다.


KakaoTalk_20251111_005304906.jpg 문이 닫힌 국수집의 모습까지도 추억이 솓아난다



20분 정도 기다렸을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겨운 나무 탁자와 주막 느낌의 실내가 반긴다.

손님은 가득했지만 소음은 없다. 사람들 입속엔 말보다 추운 날씨 탓일까 국물이 먼저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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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국수 — 속이 아니라 마음까지 정화되는 맛

멸치국수. 맑고 투명한 국물 위에 잔잔한 면발이 살짝 떠 있다.

첫 국물 한 숟가락. 짠맛보다 먼저 밀려오는 건 묵직하게 개운한 시원함이다.

공릉동 복가네 멸치국수가 떠오를 정도로 육수의 깊이가 남다르다.

면발은 얇고 쫄깃해 목넘김이 참 부드럽다.

별다른 고명 없이도 육수 하나로 식사의 중심을 잡아주는, 단정하고 절제된 국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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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국밥 — 한 그릇에 정숙함을 말아 담다


나에게 백미는 콩나물국밥이었다.

국수집에서 콩나물 국밥이라니..

흔히 떠올리는 콩나물국밥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멸치육수에 콩나물을 얹고, 밥을 미리 말아 토렴한 듯 부드럽게 퍼져 있다.

한 숟갈 떠올리면 입안에 국물과 밥, 콩나물의 숨결이 같이 들어온다.


무심하게 떠넣는 국밥이 아니다. 오히려 차분히 말 걸어오는 맛이다.

특히 국물 속에 함께 들어 있는 가는 국수는 마치 덤처럼 따라온 선물 같다.

거기다 청양고추의 알싸한 칼칼함이 마지막 여운을 남긴다.

격한 자극이 아니라, 딱 필요한 만큼의 울림.


대조동 넷길이의 푸근하고 투박한 국밥이 푸근한 아저씨의 손맛이라면,

구포국수의 콩나물국밥은 정숙한 여인이 조용히 내어놓은 듯한 정갈한 밥상이다.



해물김치전 — 예상 밖의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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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로 주문한 해물김치전은 기대 이상의 재미를 줬다.

겉은 바삭한 튀김옷, 속은 촉촉한 야채와 오징어, 김치가 섞여 있다.


야채튀김 같은 식감인데 맛은 분명 전이다. 느끼하지 않고, 오히려 담백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이어진다.

술안주 같으면서도 식사로도 손색없고, 집에서는 흉내내기 어려운 조화였다.

이 해물김치전 하나만으로도 다시 들를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껴질 만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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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이곳은 특별한 말을 건네지 않는다.

친절하지만 과하지 않고, 음식은 조용하지만 인상이 강하다.

무엇보다 이 집의 음식은 속이 아니라 마음부터 따뜻하게 만든다.



해장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고, 힐링이라는 말로는 촌스러운, 딱 그 중간 어디쯤.

시끄러운 위로나 과한 설명 없이도 고요하게 안심되는 그런 집.


성북동 구포국수에서 한 그릇을 비우고 나오는 길, 하루의 끝이 가볍고 따뜻했다.

오늘 같은 날 다시 떠오를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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