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겨울, 사랑이 일상이 되다

"50이 넘어 찾아온 열병은, 20대보다 더 뜨겁고 더 솔직했다."

by 까칠한 한량

2022년 12월~ 2023년 1월

고백, 그리고 매일의 데이트


2022년 12월. 그녀에게 친구 졸업을 선언한 후, 나의 일상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쉰을 넘어 찾아온 이 열병은 스무 살 때보다 더 뜨겁고,

망설임 없이 솔직했다. 퇴근 시간이 되면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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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전화가 온다. "저녁 뭐 먹을까?" 혹은 "오늘은 어디 갈까?"


만나다시피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매일 만났다.

내가 아직 회사를 다녔기에 평일은 서울 근교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주말만큼은 달랐다.

우리의 연애 지도에 새로운 좌표를 찍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그 첫겨울의 기록은, 지도 위에 점을 찍듯 선명하게 남아있다.


취향을 찾아 떠난 첫겨울 로드


평일 저녁, 종로 뒷골목의 허름한 생선구이 집. 나는 자신만만하게 모듬구이와 오징어 찌개를 들이밀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생선을 발라 먹으며 "응, 맛있네"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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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종로의 생선구이집


그땐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녀는 깨끗하고 밝은 식당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날의 오래되고 퀴퀴한 골목은 오직 나를 위한 맞춤이었다는 걸.

사랑은 이토록 섬세한 배려로 시작되는 것이었다.


밥을 먹고 카페로 향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산미가 강한 케냐 원두를 주문했다.


"난... 솔직히 커피 맛을 잘 모르겠어. 근데 네가 좋아하는 거 마시면 마셔보고 싶어."


그녀가 내 손을 툭 치며 웃는다. "50 넘어서 이러기 있어?"


50이 넘어 연애를 하면, 매일이 복습이자 발견이었다.

그녀의 취향은 곧 내가 이해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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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처음 가본 동두천


토요일 아침, 갑작스레 동두천으로 우리는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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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의 일본인 마을을 같이 걷고

간식은 동두천에서 유명한 햄버거로 암울했던 그 시절의 자취가 남겨진 거리를 걷기도 하고....

저녁은 그녀가 좋아할만한 식당을 미리 선정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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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 종일 연신 "맛있다!"를 외쳤다.


"너 원래 이렇게 잘 먹었어?"


"너랑 있으면 그래."


사랑은 입맛까지 바꾸어놓는 마법이었다.


간장 불고기에 간장게장에 우린 또 정신없이 먹어야했다..


나이들어 하는 연애의 시작은 일단 영양보충이 일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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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의 일미담 정갈하고 맛있다


식사 후, 내가 주문한 에티오피아 시다모의 향긋함에 젖어들면서

그녀는 점점 나의 커피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게 되는 과정.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녀가 좋아하게 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사랑의 일상화였다.


새해, 멈추지 않는 열병


크리스마스이브, 명동은 캐럴 소리와 인파로 북적였다. 오래된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고, 창밖으로 빛나는 장식을 바라보며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행복해?"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50이 넘어 이렇게 설렐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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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 과로로 쓰러질 정도로 우리는 같이 붙어 다녔다


그리고 2023년 1월 1일 새벽. 원주에서 농구를 보고 밤새 달려온 속초 해변.

추운 바람 속에서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일출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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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떠오르자 그녀가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나도 따라서 빌었다.


행복하게 해주세요. 1년 후에도 이렇게 웃으며 일출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아침으로 양양 송이 정식을 먹으며 나는 확신했다.

이렇게 살고 싶다. 그녀가 송이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나의 소원은 단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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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1_114219.jpg 양양 송이골, 뷰가 예쁘고 커피가 좋은 카페 커피고


사랑, 일상 속으로 스며들다


1월은 우리의 사랑이 일상 속으로 깊이 스며든 시간이었다.

주말마다 서울, 수원, 인천의 맛집 지도를 완성했고, 그녀는 나 덕분에 완벽한 커피 덕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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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난포, 연신내의 골목의 누룽지 통닭집


케냐의 산미, 콜롬비아의 고소함, 에티오피아의 꽃향기. 이제 그녀는는 원두의 차이를 안다.


어느 평일 저녁, 뜨끈한 국밥을 먹다가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하루도 안 보면 힘들어하는 거 같아, 우리."


"맞아. 나도 그래."


"이거 열병 아니야?"


"열병 맞아. 근데 나 좋아."


인천 선재도에서 일몰을 보던 1월의 마지막 주말. 그녀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20211114_171552.jpg 일몰을 참 좋아하는 그녀


"이 열병, 평생 낫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도."


50이 넘어 찾아온 사랑은 더 솔직하고, 더 간절했다.

첫겨울, 우리는 서로에게 완전히 젖어들었다.

그리고 3월이 오면, 우리의 본격적인 전국 투어가 시작될 예정이다.


"준비됐어?"


"당연하지."


우리는 손을 꼭 잡았다. 첫겨울은 그렇게 깊어졌고, 우리의 늦은 사랑은 그렇게 일상이 되었다.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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