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과 귀와 코가 행복햇던 날. 양주 재래식 손두부
오뉴월에 웬 감기인지, 개도 안 걸린다는 감기몸살에 며칠째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열도 나고 몸도 아픈데, 무엇보다 입맛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고, 밥상 앞에 앉아도 젓가락이 무거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 날이 며칠째 이어지자, 담백하고 따뜻한게 생각나 짝지와 함께 양주로 차를 몰았습니다.
사실 처음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두부 한 그릇이 뭘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차에 올랐고 가는 내내 뭐라도 먹고 기운을 차리자 하며 차를 달렸고,
하지만 주차장에서 내리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향기가 달랐습니다.
들기름이 끓는 냄새, 막 익은 두부의 고소함이 공기를 타고 흘러왔습니다. 오랜만에 향기에 반응하는 내 코를 보며 조금 놀랐습니다. '어? 뭔가 다르네?'
자리에 앉아 짜박두부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옆 테이블에서 재밌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덕분에 무겁고 우울했던 기분부터 확 풀렸습니다.
두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초등학생 3명과 두 부부가 둘러앉아 정겹게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줌마가 건너편 테이블의 여성을 유심히 보더니 말했습니다.
"어머, 누구 엄마 살 많이 빠졌네? 다이어트 열심히 하나 봐요!"
칭찬인지 견제인지 애매한 그 톤에 건너편 여성이 겸손하게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니에요, 열심히 하긴... 잘 안 빠져서요..."
"에이~ 겸손하기는. 눈에 확 띄게 빠졌어요!"
그렇게 다이어트 토크가 오가던 그 순간,
옆에 앉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두부를 후루룩 먹다가 천진난만하게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우리 엄마 날씬 안 한데... 63kg나 나간다고 아빠가 꿀꿀이라고 놀리는데..."
순간 식당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엄마는 수저를 들고 있던 손이 멈췄고, 아빠는 "어어어..." 하며 황급히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모든 게 늦었습니다. 특히 아빠는 본인이 '꿀꿀이'라고 놀린 게 들통 나서 더욱 당황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아이고, 꿀꿀이라고 했대!" "아빠가 더 큰일 났네!" "푸하하하!"
그 순간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웃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의 순수한 폭로가 이렇게 사람들을 웃게 만들 줄이야. 엄마는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져서 아빠를 째려봤고, 아빠는 "야야야, 그건 농담이었잖아!" 하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결국 온 가족이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식당 전체가 훈훈한 웃음으로 가득해졌습니다.
그렇게 웃음이 도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짜박두부가 나왔습니다. 타이밍이 딱 맞았습니다.
빨간 고춧가루가 뿌려진 하얀 두부 위로 들기름이 자글자글 끓고 있었습니다.
숟가락으로 한 입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뭔가가 확 깨어났습니다.
먼저 들기름의 고소한 향이 입안 가득 퍼져왔습니다.
그 다음엔 칼칼한 매운맛이 혀끝을 자극하더니, 부드러운 두부가 입에서 사르르 녹으면서 담백한 맛이 뒤따라왔습니다. 매콤하면서도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이 절묘한 조화가 정말 맛있습니다.
그리고 이 짜박두부를 밥 한 술과 함께 떠먹으니... 세상에, 이보다 완벽한 조합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밥의 단맛과 두부의 담백함, 들기름의 고소함이 입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로.
반찬도 12가지나 나왔는데, 하나하나가 다 정성스럽습니다. 특히 깍두기와 시금치나물을 밥에 비벼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입맛이 돌아오고 있는 게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그 63킬로그램 엄마네 가족도 결국 모두 함께 웃으며 식사를 마쳤습니다.
물론 그 엄마만 빼고는 말입니다. 저는 그런 따뜻한 풍경을 보며 더욱 맛있게 두부를 비워냈습니다.
마지막에 나온 누룽지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아, 이래서 내가 맛집을 찾아다니는구나.'
아프고 찌부둥한 몸도 한결 좋아졌고, 기분도 꼬마의 신랄한 폭로와 함께 나아졌습니다.
이렇듯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이런 소소한 일상의 재미와 따뜻함까지 함께 맛볼 수 있는 곳.
며칠 동안 사라졌던 제 입맛을 되찾아준 고마운 곳. 양주까지 가는 길이 멀긴 하지만, 또 가고 싶은 곳입니다.
양주 재래식 손두부 본점
경기 양주시 어하고개로 32,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