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발견, 그러나 예상된 놀라움 - 정릉 봉화묵집
정릉이라는 동네는 참 묘한 곳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어딘가 시간이 멈춰선 듯한,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죠.
저는 그런 정릉의 골목길을 헤매다가, 또 하나의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발견이라기보다는 '확인'이라고 해야겠네요.
정릉에는 이런 오래되고 진짜 맛있는 식당들이 숨어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정릉으로 올라가는 그 익숙한 길목, 40여 년이라는 세월을 버텨온 한 집이 있습니다.
봉화묵집.
이름부터가 직설적입니다.
요즘처럼 SNS용 예쁜 간판이나 세련된 네이밍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그냥 '묵집'입니다.
오후 2시가 넘은 애매한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꽤 있었습니다.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식당이라 그런지, 옛날 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장님께서 이 건물에서만 22년째 영업 중이라고 하시네요.
벽 한쪽에는 그간 다녀간 손님들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연예인 사인부터 시작해서 일반인들의 방문 증명서까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입니다.
주문은 손칼국수, 손만두, 메밀묵.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나온 반찬들을 보니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그냥 정직한 맛이었습니다. 특히 김치는 묵은지인데, 시원하고 깔끔합니다.
메밀묵은 처음이었습니다. 도토리묵은 많이 먹어봤지만, 메밀묵은 생소했거든요. 첫 국물을 떠먹어보니 심심합니다. 사장님이 알려주신 대로 고추장아치와 간장양념을 넣고 젓가락으로 비비니 완전히 다른 맛이 됩니다.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의 그런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슴슴한 국물이 계속 당기는 맛. 분명 심심한 맛인데 왜 이렇게 자꾸 숟가락이 움직이는지 신기했습니다.
가끔씩 무른 묵만 먹기 단조로울 때는 동치미를 한 번씩 입에 넣어주니 좋습니다.
칼국수는 일반적인 칼국수와 달랐습니다.
안동국시 스타일에 가까운데, 특이하게 면에 콩가루가 들어가 있습니다. 면에서 콩 내음이 나고, 식감도 다른 면과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각종 고명과 함께 면을 입에 넣고 국물을 한 모금 마시니,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입안에 퍼집니다.
손만두는 딱 집에서 만든 김치만두였습니다. 요즘 어디서 이런 만두를 먹어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박하고 정직한 맛입니다.
이상한 건 이겁니다. 이렇게 심심하고 슴슴한데 왜 이렇게 계속 국물을 떠 먹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중독성이 있는, 그런 묘한 맛입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다음에는 메밀묵에 천 원하는 조밥을 추가해서 말아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토리묵은 많이 접해봤지만 메밀묵은 처음이었는데,중독이 될것같은 묘한 맛입니다.
봉화묵집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담백하고 슴슴합니다. 그런데 왜인지 자꾸 생각나는 맛입니다.
이런 걸 진짜 맛이라고 하는 건 아닐까요. 이제는 제 인생 맛집이 되었습니다.
봉화묵집 서울 성북구 아리랑로19길 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