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0년 가마솥의 마지막 김

종로 골목 깊은 곳, 사라질 비지 한 그릇의 온기. 종호네 콩비지

by 까칠한 한량


종로 5가에서 6가로 올라가는 길목, 좁은 골목 안쪽에 80년 전통의 종로6가의 터줏대감 종호네 콩비지가 있습니다. 80년을 한자리에서 비지만 끓여온 노포입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비주얼은 솔직히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숟가락 뜨는 순간, 왜 이 집이 비지 하나만으로 80년을 버텨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a_d8bUd018svc1fray4j3ba5h7_oh6i9t.jpg


이곳의 대표 메뉴는 따구비지입니다.

돼지 등뼈를 따구라 부르는데, 새벽 3시부터 직접 갈은 콩을 가마솥에서 끓이고 등뼈를 넣어 무게감을 더합니다.


b_a8bUd018svcfcgbovzq5y6_oh6i9t.jpg
b_78bUd018svc13u9bu6ztvxya_oh6i9t.jpg
b_48bUd018svcgn0ecu1ueje3_oh6i9t.jpg
b_c8bUd018svctnzslnr6k3n_oh6i9t.jpg


비지는 부드럽고 고소했고, 함께 나오는 양념장으로 간을 맞추면 칼칼한 맛이 담백함을 깨웁니다. 열무김치, 무생채, 백김치를 곁들이니 무거운 등뼈비지가 한결 개운해집니다.


b_f8bUd018svc1tgvmy5o448qn_oh6i9t.jpg


두 번째 방문에서는 김치비지도 맛봤습니다.

잘 익은 김치와 비지의 조합이 묘했습니다.


7_e9iUd018svcxww490tml4ca_oh6i9t.jpg


무채를 넣고 양념장을 쳐서 밥에 비벼 먹으니, 왜 사람들이 이 집을 찾는지 더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추운 날이었는데, 사장님이 난로 위에서 끓이던 결명자차를 따뜻하게 내주셨습니다.


7_h9iUd018svc5a2bfwabdkvj_oh6i9t.jpg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옛날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전 이 근처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던 시절, 동대문 시장 상인들과 여행객들로 북적였다고 합니다.

소주를 반병씩 덜어서 팔 정도로 장사가 잘됐던 때도 있었다며 웃으셨습니다.


a_a8bUd018svch92rwvkxf4i2_oh6i9t.jpg


하지만 지금 2대째 이어온 이 집은, 사장님 대에서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새벽 3시부터 시작하는 고된 일을 누가 하겠느냐는 사장님의 표정이 조금 쓸쓸했습니다.


b_h8bUd018svc1cbpbguvnwdoy_oh6i9t.jpg


80년 전통의 맛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더 자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담백한 비지 한 그릇의 온기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8_d9iUd018svc1loov4nqzlwn1_oh6i9t.jpg


종로 6가 닭한마리 골목 근방, 골목 안쪽 깊은 곳.

종호네 콩비지는 그렇게 묵묵히, 오늘도 비지를 끓이고 있습니다.


종호네콩비지 서울 종로구 종로 248

keyword
이전 14화첫 미팅은 실패했지만, 함박과는 아직 잘 지냅니다